상한 영혼을 위하여
포크가 접시에 비벼졌다. 기분 나쁜 소리가 났다. 제풀에 놀란 순영이 주변을 살폈다. 눈알이 매끄럽게 돌아간다. 정신 사납게 계란을 헤집는 순영을 신경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귀족 살인마 도주, 발견 즉시 사살' 옆 자리 할아버지의 신문이 팔랑거리며 넘어갔다. 순영을 심란하게 했던 글씨도 접혀들었다. 헤드라인이라니, 하루가 가기도 전에 수배가 내려졌다. 망할 귀족을 때리고 도망쳤다는 이유였다. 죽을 정도로 때렸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헤드라인이 났으니 죽은 거겠지. 귀족의 몸에 손이 닿는 것만으로도 손목이 잘리는 이 황량한 곳에서 상해는 중범죄였다. 모든게 흐트러진 이 곳에서 중범죄는 길을 걷다 총에 맞아 죽어도 싼 범죄였다. 당장 혀를 씹으면 그나마 덜 고생하고 뒤지는 건 아닐까. 씁쓰름한 커피가 독약 같았다. 고개를 숙였다. 잔뜩 흩어진 계란 옆 소시지를 쑤셨다.
"안녕하세요."
"아 씨발-"
깜짝이야. 뭐라도 먹어야지 싶어 쑤시던 소시지를 찍어올리는데 텅 비어있던 앞자리에 반짝이는 미소를 띈 남자가 앉아 있었다. 새카만 흑발머리가 갈라져 매끈한 이마를 드러냈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었다. 순영은 빠르게 품 속에 있는 나이프를 쥐었다. 여차하면 찌르고 도망가야 했다.
"호시, 호시 맞죠?"
"..."
"와, 진짜다. 호시, 나랑 같이 다녀요."
무슨 헛소리야, 하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남자는 지지 않고 더 밝게 웃었다. 뾰족한 이가 튀어나왔다. 꽃받침까지 하고 웃는 모습에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저는 민규고, 어쩌다 호시 수배지를 봤는데 저 사람이다 싶어서 찾아다녔어요. 절대로 경찰이나 그런 건 아니구, 한 눈에 반했으니까. 호시 1호 팬."
순영은 여전히 품 속에 손을 넣고 있었다. 의심스러운 눈초리 역시 걷히지 않았다. 민규는 눈썹을 늘어트렸다. 어깨를 으쓱했다. 어쩔 수 없지. 중얼거리더니 다시 순영을 본다.
"증명해 볼까요?"
눈을 찡긋한 민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혼잡한 가게 안의 시선들이 잠시 꽂혔다 도로 자리를 찾았다. 잠깐 순영의 의아한 얼굴을 본 민규는 목을 가다듬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곤 순식간에 탕-!
천장에 총알을 박았다.
또라이다. 순영은 직감적으로, 아니 너무 명쾌하게 느꼈다. 지금이라도 자리를 떠야했다. 어벙한 얼굴을 저었다. 정신을 차리려는데 상큼하게 뿌려지는 민규의 윙크에 다시 넋이 나가버렸다. 어이가 없어 텁텁하게 웃었다. 민규는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흩어진 굉음에 다들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다들 손 들어주세요~"
어울리지 않게 친절한 말투였다.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한 채로 민규를 바라봤다. 움직이지 않는 팔들에 민규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번엔 벽에 걸린 그림을 향해 총을 쐈다. 다시금 확실한 총성과 유리의 파열음이 울렸다. 이번엔 빠르게 손이 올라갔다.
터벅터벅 계산대로 다가간 민규는 주머니를 뒤져 봉지 하나를 내밀었다. 총구는 여전히 벌벌 떠는 사람들을 향해 있었다.
"팔백 달러! 넣어주세요."
주문을 하듯 애교스러운 말투였다. 사색이었던 종업원의 표정이 애매해졌다. 손은 굼뜨게 움직였다. 민규의 총구가 돌아갔다. 총구가 자신을 향하자 종업원은 후다닥 낡은 포스기를 열려다 다시 민규를 마주봤다. 그리곤 손목을 붙잡았다.
"쏘, 쏠 수 있음 쏴 봐."
"뭐?"
"이런 거 처음해보지?"
당황한 민규는 잡힌 손목을 뿌리치지 못했다. 사람들은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손을 숙였다. 순영이 한숨을 폭 내쉬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눈빛이 바뀌었다.
총알은 종업원의 머리 바로 옆을 지나갔다. 강하게 궤도를 그렸다. 벽에 박히자 금을 만들었다. 내려가던 손들은 죄다 다시 경직됐고, 종업원 역시 말을 잃고 손에 힘을 풀었다.
"얘는 못하지."
순영은 뚜벅뚜벅 여유있게 걸었다. 건조한 목소리는 가게를 무겁게 만들었다. 계산대에 다다르자 눈빛이 더욱 차가워졌다. 민규마저 마른침을 삼겼다.
"근데 나는 하거든."
느슨하게 잡혀있는 손을 거칠게 빼낸 순영이 손자국 남은 민규의 손목을 살폈다. 빨리 챙겨. 눈에 띄게 몸을 떠는 종업원에 순영이 손짓했다. 입술을 꾸욱 문 종업원이 묵직해진 종이봉투를 넘겼다. 파, 팔백 달러까지는 없어요. 순영이 표정 변화 없이 봉투를 낚아챘다. 눈을 깜빡이던 민규가 순영의 팔을 붙잡고 가게를 나왔다.
두둑해진 주머니를 잠군 민규가 순영을 이끌고 데려간 곳에는 새빨간 신형차 한대가 있었다. 씨발, 이거 롤스로이스 아니야? 운전석에 올라탄 민규가 당황한 순영에게 손짓을 했다. 주춤대던 순영은 저 너머에서 발소리가 울리자 거칠게 조수석 문을 열었다. 부와앙- 요란한 소리를 내며 차가 출발했다. 민규는 여유롭게 선글라스를 꺼내썼다.
"아쉬워요. 연습 많이 했는데."
칭얼대는 말투에 순영이 헛웃음을 뱉었다. 너 죽을 뻔 했어, 또라이 새끼야. 한대 쥐어박으며 얘기하고 싶었지만 일단은 입을 다물었다. 롤스로이스에 괜히 기가 죽었다. 에이 썅, 자존심이 있지. 순영이 다시 얼굴을 굳혔다.
"누구야, 너."
"아까 말했잖아요. 호시 팬이라고. 이름은 민규. 만나게 돼서 기뻐요. 진짜 보고싶었거든요."
어이가 없다못해 민규가 이상해 보이기까지 했다. 찡그린 눈으로 빤히 바라보자 다시 입술을 삐쭉 내민다. 참 애교스러운 습관이다. 순영은 터져나오는 실소를 참지 못했다. 뜨거운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고개를 꺾자 붉어진 귓바퀴가 눈에 띄었다. 민규의 깎은 듯한 옆태를 살폈다.
구릿빛 피부에 검은 머리칼이 이마를 반쯤 덮었다. 입을 다물고 있으니 차가워보이는 미남이다. 눈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자꾸만 흔들리는 동공에 이번엔 실소 아닌 진짜 웃음이 튀어나왔다. 왜 웃어요오- 눈썹을 축 늘어트리고 울상을 짓는 얼굴에 알겠다며 손을 흔들었다. 파랗게 펼쳐진 하늘로 눈을 돌렸다. 뭉게 구름이 드문드문 찍혀있는게 꽤나 장관인 황야 풍경이었다.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옆자리의 수상한 미남이 신경쓰였지만, 왠지 긴장이 풀려버렸다. 차츰 잠에 빠져들었다.
순영과 같이 다니고 싶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는지 민규의 차 뒷자리에는 온갖 총기류와 무기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나보다 심각한 범죄자 아니야?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날렸지만 민규는 자신이 모은 준비물에 스스로 뿌듯해하느라 바빴다. 결국 칭찬해 달라는 눈빛을 하고 자신을 보는 민규의 어깨를 툭툭 쳐주고 말았다.
"그리고 라스베가스에 가는 거예요. 우리는 이제 은행 강도니까! 거기 큰 은행이 있거든요."
"언제부터 우리야? 그리고 은행 강도라니."
"에이, 형~"
"왜 은행 강도냐고."
"어차피 절도범이잖아요. 호시도 귀족 죽인 것 때문에 이름 날렸고, 나도 이제 호시 사이드킥인데. 짜잘하게 털 바에야 한 번 제대로!"
"굶어 죽지 않으려고 훔치는 거랑 같아?"
"굶어 죽지 않으려고 굶어 죽을 사람들 돈을 훔치고 싶어요?"
"...뭐?"
"나라면 '그' 고든네 은행들을 털겠어요. 재수없으니까."
고든이라 하면, 서부에서 가장 큰 은행을 운영하는 이름난 은행가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거의 유일한 은행을 운영하는 사람이었다.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와 거대한 풍채를 자랑하는 고든의 얼굴을 모를 수는 없었다. 어느 마을을 가던 고든의 이름이 커다랗게 박혀있었으니까. 대출 이자는 터무니없이 비쌌고, 그 돈들은 대부분 귀족들의 뒷주머니로 들어갔다. 어머니의 뺨을 내리치던 두툼한 귀족의 손을 떠올리자 순영은 목으로 뜨거움 것이 올라왔다. 순영의 눈가가 벌겋게 변한 것을 모르는지 민규는 태연히 되물었다.
"그렇지 않아요?"
"...그래. 그러자."
"네?"
"하자고, 은행강도."
라스베가스가 나올 때까지 이틀 정도를 달려야 했다. 차에서 지낼 수 있을까 싶었지만 민규와 민규의 롤스로이스는 만능이었다. 땡볕 아래 순영이 인상을 찌푸리자 트렁크에서 챙 넓은 모자 두개가 나왔고, 해가 지고 날씨가 쌀쌀해지자 마법처럼 두툼한 담요를 꺼냈다. 아침이면 이미 고소하게 소시지 굽는 냄새가 풍겨왔다. 대체 그릴은 어디서 나온거야. 순영이 팅팅 부은 얼굴로 소시지를 우물거렸다. 그와중에 민규는 얼굴 더 탄 거 같지 않아요? 따위의 이야기를 하며 후라이팬을 꺼냈다.
담배와 물, 음식을 구하러 작은 마을에 들리자 민규는 순영을 펍에 밀어넣었다. 장을 보고 올테니 말썽 피우지 말고 있으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낡은 바에 걸터앉은 순영은 어느새 꾹 눌러담긴 맥주잔을 들고 있었다. 오랜만에 먹는 술에, 요즘은 담배도 안 피웠다. 롤스로이스를 타고 달리느라 정신이 없기도 했지만 차를 멈추기만 하면 조잘대며 대화를 거는 민규 때문도 있었다. 단칼에 거절하고 멀리 가려하면 예의 그 삐쭉대는 표정으로 사람을 신경쓰이게 했다.
"어디 멀리가나 보오."
"네."
"어딜 가는진 모르지만 조심하쇼. 요즘 어딜 가도 좀도둑이나 강도가 판치니. 이번에 윌리엄스에서는 식당을 턴 이인조도 있었다오. 오죽 털 데가 없으면 음식점을 털까. 하긴 그 사람들 보다야 귀족이나 무장경찰이 무서운 시대긴 하지."
머리가 벗겨진 주인이 쥔 컵에서 뽀득뽀득 닦이는 소리가 났다. 윌리엄스에, 음식점이면, 나랑 김민규군. 적당히 잔을 들어 맞장구를 친 순영이 속으로 욕을 뱉었다. 하여간 김민규, 애가 충동적이어가지고는. 걔도 수배 내려왔을 수도 있겠는데. 잔을 내려놓자 반쯤 남은 맥주가 출렁댔다.
"신문 좀 볼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지. 여기, 오늘 신문일세."
대강 다른 면을 훑는 척 하며 빼곡한 수배 목록을 살폈다. 귀족 살인마와 동행하니 금세 수배에 오를 터였다. 낯 선 얼굴들 사이에 잘생긴 얼굴을 찾아 눈을 빠르게 움직였지만 민규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 신상 수집을 못 했나. 요즘같은 시대에 사람 하나 찾아서 신문에 박아두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닐텐데. 의아했지만, 뭐. 순영에게도 갑작스러운 일이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갈까요, 호-"
"어, 다 샀냐?"
문이 열리고 가벼운 발걸음이 순영의 뒤에 멈춰섰다. 허리를 숙여 얼굴을 들여보는 민규의 입을 다급히 막았다. 주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재빨리 능청을 떨며 맥주를 들이켜고 동전을 건넸다. 시원스레 인사하고 문을 나서자 순영이 한숨을 쉬었다.
"순영이 형이라고 불러. 동네방네 수배자 자랑할 일 있어?"
"아하, 죄송해요."
죄송할 건 없고. 대충 대답했다. 민규가 쥔 짐을 나눠 들었다. 마을 나오기 전 순영은 잠시 벽에 기대 주머니를 뒤졌다. 누런 해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뿜었다. 민규에게 먼저 가있으라 눈짓을 했다. 목으로 씁쓰름한 연기가 가라앉았다.
순영은 빠르게 지나가는 창밖을 봤다. 한가로이 시트에 몸을 묻은 채였다. 붉은 대지와 시퍼런 하늘이 흐릿하게 스쳐지나갔다. 태어나서 처음 맞는 여유. 순영이 나른히 무너졌다. 라디오에선 민규가 흥얼거리던 팝송이 흘러나왔다. 조용하지 않은 노래임에도 분위기는 고요했다.
"좋다."
"뭐가요?"
"편하잖아. 기분이."
민규가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다 순영을 봤다.
"그건 아마 형이 운전을 안 해서 그런 거 아닐까요?"
와핫, 웃음을 터트린 순영이 민규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머쓱하게 화답하려던 민규가 얼굴을 굳혔다. 요란한 엔진 소리가 더해진 탓이었다. 한산한 도로에서 주행자를 만나는 것이 어렵기는 했지만 민규의 반응은 심각했다.
"따라오는 거 같아요."
"요즘 수배자가 얼마나 많은데, 갑자기 경찰이 나설리가."
"그게- 경찰이 아닐... 음, 아무튼 속도 좀 올릴게요."
"그러던지."
민규가 부드럽게 악셀을 밟자 금방 속도가 빨라졌다. 살짝 연 창틈으로 바람 소리가 거셌다. 걱정도 많네, 속으로 중얼거리는데 퍽, 하고 뒷 차창에 총알이 박혔다.
"씨발?"
"말했잖아요. 따라온다고. 총 쥐어요."
"좆도 일 안 하던 새끼들이.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대."
허허, 그러게요. 어색한 말을 흘려낸 순영이 창문을 내려 백미러를 확인했다. 얼씨구, 바이크 두대에 차 한대, 네명인가? 많이도 왔다. 총을 꺼내 뒷좌석으로 넘어갔다.
"이거 장전된 거지?"
"네, 거기 리볼버만요."
실린더를 확인한 순영이 입술을 핥았다. 빠르게 따라붙은 경찰은 뒷 차창을 거덜냈다. 민규가 몸을 움츠렸다. 거센 바람이 차 안으로 몰아쳤다. 민규야, 신호 주면 꺾어. 나지막한 소리에 민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순영은 유연하게 몸을 돌렸다. 탕, 탕, 탕 일정하고 빠르게 연사된 총알이 바이크를 쓰러트렸다. 지금, 급하게 바뀐 위치에 순영을 향해 몰려들던 총알이 차를 스치고 지나갔다. 시트 안으로 몸을 숨긴 순영이 숨을 골랐다. 백미러로 쓰러진 채 연기를 뿜으며 구르는 바이크가 비쳤다. 쫄려 뒤지겠네.
시트 너머로 고개를 살짝 내밀자 총알이 다시 날아들어왔다. 바이크 한 대가 없다. 몸을 숙이자 곧바로 옆 차창이 박살났다. 에라이, 빠르게 팔을 뻗어 창을 깬 총신을 붙잡았다. 총구에서 불꽃이 날리고 총알이 천장에 박혔다. 곧바로 순영의 총알이 총을 쥔 남자의 팔을 관통했다. 굵은 비명이 터졌다. 바이크는 도로 옆으로 밀려났다. 한번 더,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차가 다시 한번 급하게 차선을 바꿨다. 밀려난 바이크의 바퀴에 총알이 맞았다. 바이크는 맥없이 뒤집어졌다.
"손 괜찮아요?"
"어, 너 운전 잘 하네."
안 괜찮다. 벌겋게 피부가 부어올랐다. 너덜너덜한 손으로 리볼버를 장전했다. 순영이 다시 몸을 세웠다. 다섯발을 연사하자 앞 창에 금이 갔다. 총알이 머리칼을 스쳐지나가자 순영은 몸을 숨겼다. 한숨이 떨어졌다. 차는 어떻게 세우냐. 중얼거리는 말에 민규가 핸들을 쥐었다.
"가까워지면 쏴요."
"뭐?"
대답없이 민규가 브레이크를 밟았다. 속도가 급하게 줄었다. 도로 위로 타이어 깎이는 소리가 퍼졌다. 채 꽁무니를 쫓던 경찰차는 앞 범퍼가 산산히 찌그러졌다. 씨발, 람보르기니. 쏠리는 몸을 겨우 지탱하고 총알을 날렸다. 어깨와 팔뚝, 이정도면 못 쫓아오겠지. 순영이 다시 앞자리로 넘어오자 뒤가 너덜너덜해진 람보르기니가 다시 속도를 태웠다.
해가 내려앉고 어둠 속을 달렸다. 민규는 내내 순영의 눈치를 봤다. 울상이었다가 무표정을 하려다가 다시 비맞은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지었다. 언제쯤 말을 걸지 기다렸다. 부딪히는 이야기는 없었다. 결국 순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뭐, 할 말 있냐?"
"...손이요."
"이거? 그냥 이렇게 두면 낫겠지."
대강 손수건을 둘둘 말아둔 왼손은 말은 안해도 꽤 쓰라릴 터였다. 괜찮다는 듯 손을 훌훌 털었다. 살짝 찡그려지던 미간을 못 볼리가 없었다.
"니가 뭘 그렇게 속상해 하냐. 네 잘못도 아닌데."
"내 잘못일 수도 있죠..."
"뭐래. 이쯤하고 좀 자자. 너도 피곤할 거 아니야."
"난 괜찮아요. 형 먼저 자요."
저렇게 두고 어떻게 자. 머리를 거칠게 긁적였다. 최대한 빨리 마을에 닿으려 달리는 것이 분명했다. 애써 웃어보이는 민규에 시트에 몸을 묻었다가 일으키기를 반복했다. 귀찮은데, 귀엽고. 신경쓰였다. 걱정하게 만들었다. 한숨만 하다 결국 민규의 오른손을 끌어다 잡았다. 손수건이 감긴 왼손으로 깍지를 꼈다. 얽힌 두 손이 단단하게 흔들렸다.
"나도 진짜 괜찮으니까. 좀 쉬다 가."
"그래도. 빨리 약 바르고... 아- 구급약을 좀 사놓을 걸 그랬나봐요."
"나중에 사. 그 땐 나도 뭐라 안 하는데. 너 지금 좀 쓰러질 것 같거든? 저기다 차 대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차가 미끄럽게 도로 밖으로 몸을 움직였다. 민규는 시동을 끄고도 여전히 안절부절 못했다. 순영이 안전벨트를 풀어주고 시트까지 내려줬다. 담요, 하며 일어나려는 걸 눕히고 담요까지 덮어줬다. 굿나잇 키스라도 해줘야 되나. 쓸데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민규의 얼굴이 붉어지는게 어두운 와중에도 눈에 띄였다. 잘 자라. -잘 자요. 눈을 몇번 끔뻑이다 잠들었다.
시뻘겋고 시퍼래진 손에 소독약이 쏟아졌다. 순영은 인상을 썼다. 지금까지 본 얼굴 중에 제일 험악하다. 민규는 피식 터지는 웃음을 눌렀다. 벌벌 떨리는 손목을 붙잡고 꾸덕한 연고를 치댔다. 순영이 입술을 깨물었다. 민규가 키득대는 소리에 눈을 흘기기도 한다. 관자놀이에 송골송골 땀이 솟는 것은 알까. 발갛게 익은 피부에 민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더워요?"
"어, 덥다. 더워죽겠네."
"에어컨 빵빵한데."
거짓말은 아니었다. 민규가 잡은 방은 좁지만 알찼다. 새하얗고 푹신한 침대라던지 깨끗한 바닥이 그랬다. 티비는 작았다. 손바닥 두개만한 크기였다. 천장이 낮고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다는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좁은 골목을 거쳐 와야하는 곳이라 그랬다. 민규의 손이 얇은 거즈를 덧댔다. 작은 손바닥에 고정시켰다.
"끝. 이제 얼굴 펴요."
"...고맙다."
엉성하게 시작하더니 꽤 그럴듯한 모양새로 마쳤다. 민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지의 무릎 부분이 하얗게 변해있었다. 미안한 마음에 덩달아 침대에서 엉덩이를 뗐다.
"어, 어디 가게?"
"네? 아뇨. 어디 갈래요?"
"글쎄. 저녁 먹으러 갈까?"
"그래요."
민규가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봉투를 정리하고 점퍼를 걸쳤다. 날이 어둑어둑해졌다. 저번 마을 보다는 번화한 거리가 펼쳐졌다. 은은한 조명이 눈에 띄었다. 사람이 많아지자 걸음도 빨라졌다. 대충 아무 가게를 골랐다. 선셋 시티. 미국 서부에서 선셋이라니, 우습다. 씁쓸한 입꼬리가 올라갔다. 문을 열자 종이 맑은 소리를 냈다.
어두운 가게에 퍼런 조명이 돌았다. 음식점이라기 보단 펍 분위기였다. 어쩔 수 없이 맥주를 시켰다. 치즈를 끼얹은 치킨은 들고 뜯기 좋았다. 술이 들어가기도 좋았다. 순영은 금방금방 잔을 비웠다. 천천히 마시라는 말도 그닥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가게를 나올 때쯤 순영은 꽐라가 돼 있었다. 순영을 부축해 나온 민규가 곤란한 얼굴을 했다.
"형, 순영이 형."
"응."
"걸어봐요."
"응."
방으로 돌아올 때까지 순영은 축 늘어진 채 민규에게 기대 있었다. 침대에 순영을 올려놓았다. 밥을 먹으며 무슨 얘기를 했는데 죄다 헛소리였다. 그니까 세상 한탄 비슷한 거였다. 반쯤 눈을 뜨자 자신을 내려다 보는 민규와 눈이 마주쳤다. 까만 앞머리가 쏟아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봐도 잘생겼냐. 한탄거리가 늘었다.
"씻고 올게요."
"으응."
순영이 불긋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욕실로 걸어가는 민규의 뒤태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눈이 핑핑 돌았다. 왜 이렇게 취기가 오르는지 알 수 없었다. 일어서려 침대를 짚었다. 씨발! 손바닥이 욱씬거리며 열을 토해냈다. 우당탕 소리를 내며 미끄러졌다. 민규가 놀란 얼굴을 내밀었다. 엉덩방아를 찧은 모습을 보곤 종종 걸음으로 왔다.
"괜찮아요?"
씨발... 괜찮아요? 소리를 몇 번이나 하는지. 짜증나게, 짜증나게. 짜증나게 고마웠다. 그냥 짜증만 났는데 고맙고 귀여워서 짜증이 더 났다. 씨발, 씨발. 주저앉은 채로 중얼거렸다. 고개를 들자 민규가 쭈그려 앉아 순영을 보고 있었다. 심통 가득한 얼굴을 뚫어져라 봤다.
"뭘 봐."
"미안해요."
"갑자기 뭐어래."
"손이요. 미안해요."
"진짜 뭐라는지 하아나도 모르겠거든."
"그냥 다 미안해요."
"됐어. 그냥 자라아."
눈 앞에서 사과만 쏟아내는 입이 그렇게 얄미울 수 없었다. 영문도 모르고 사과받는 사람 입장도 생각해 줘야지이. 투정부려도 민규는 눈만 깔았다. 속눈썹이 떨어지는게 예뻤고 축 처진 얼굴에서도 보이는 볼이 귀여웠다. 잘생겨가지고. 순영은 눈을 깜빡였다. 눈을 뜨니 민규의 턱을 잡고 있었다. 음, 가까이서 보니까 더 잘생겼네. 별 생각없었는데 분위기가 잡혔다. 민규가 눈을 감길래 키스했다. 그 뿐이었다.
벗은 몸으로 일어났다. 민규가 깨지않게 조심조심 침대를 벗어났다. 휑한 어깨 위로 이불을 덮어주고 티랑 바지만 꿰어입었다. 별다른 생각이 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취했고, 잤고, 그래서 뭐, 달라질게 있나. 머릿속의 순영이 어깨를 으쓱했다.
좁은 골목으로 나가 담배를 빼어물었다. 열심히 연기를 뿜었다. 햇살이 퍽 뜨거운데 그 햇살조차 고개를 디밀지 못했다. 칙칙한 벽에 기댔다. 몇 걸음만 걸어도 햇살이 대지를 달구는데 순영과 골목은 다른 시간을 살았다. 얇은 벽 너머로 우당탕 소리가 들렸다. 문고리를 잡기만 했는데 문이 열렸다. 민규가 허리랑 머리를 잡고 나타났다.
"야 나 담배. 담배 냄새 나. 들어가 있어."
"으, 괜찮아요."
황급히 담배를 비벼 껐다. 괜찮대두. 꿍얼거리는 말은 귓등으로 넘겼다. 한 걸음 옮기는데 다시 으,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아픈데 넘어지기 까지 하고. 머리 부딪혔어요. 투정끼가 잔뜩 묻어나 순영은 그저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몇마디를 나누다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다시 문을 나선 둘은 새카만 선글라스를 낀 채였다.
새차를 샀다. 파란색 똥차였다. 눈에 안 띄는게 좋고, 어차피 라스베가스에 도착하면 버릴 차였다. 그 곳에는 민규가 사 놓은 차가 있댔다. 순영은 잠시 의문이 생겼지만 롤스로이스부터 짚고 넘어가기는 귀찮았다. 똥차는 털털대는 구린 승차감을 선사했다. 도로에서 멈춰서기도 했다. 한산하다 못해 쥐새끼도 안 보이는 도로라 망정이었고, 둘에겐 조금 좋은 일이기도 했다.
몸이 솔직해지면 마음도 솔직해진다. 보통 반대의 순서를 지나지만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순영은 잠시 멈춰선 차 안에서 민규와 혀를 섞으며 생각했다. 질척한 소리가 나면 의식하듯 속눈썹이 팔랑거렸다. 순영은 종종 눈을 떠 그 떨리는 속눈썹을 확인했다. 무슨 생각인진 모르겠는데 민규도 가끔 눈을 떴다. 그렇게 동시에 눈을 뜨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손깍지를 꼈다. 손도 키스하듯 야하게 비볐다. 도로 위에서 그렇게 키스했다.
"근데 선글라스는 뭐냐? 이제 차탈 일도 없는데"
"필요해질 걸요."
키스하기 전 벗긴 민규의 선글라스를 건네주며 말을 꺼냈다. 모호한 대답에 순영은 고개를 미간을 좁혔다. 흠, 선글라스를 들여다봤다. 아무래도 별로지. 대시보드에 까만 선글라스를 던져놨다. 민규가 콧방귀를 뀌었다. 태연하게 샌드위치를 까서 입에 넣어주자 금방 입꼬리를 올리긴 했다.
어둠이 들이찬 도로를 달렸는데 도착한 곳은 빛의 도시였다. 순영은 눈에 가득 꽂히는 불빛들에 인상을 찌푸렸다. 불빛도 불빛인데 사람도 많았다. 거의 지나온 길의 모래알 만큼 많았다. 민규가 어깨를 으쓱했다. 순영은 입술을 삐죽이며 선글라스를 썼다. 알아볼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다만은. 공연히 투덜댔다.
혼잡한 거리를 민규는 망설임도 없이 걸었다. 그런 민규의 꽁무니를 쫓으며 순영은 화려한 거리를 구경했다. 거대한 광대 모형이 코에 불을 붙이고 건물을 밝혔다. 어디든 네온사인이 번뜩였다. 뜬금없는 야자수에도, 찰랑이는 인공 강물 속에도, 심지어는 교통안내로봇도 빛을 걸치고 있었다. 지나온 마을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모양새였다. 민규는 계속 긴다리로 휙휙 걸어갔다. 고든 은행 앞 으리으리한 호텔에 방을 잡았다.
"어때요 라스베가스."
"어떻긴 뭐, 똑같지."
"헐, 완전 허세."
입은 웃었지만 사실 어질어질 했다. 이게 현대고 순영이 살던, 순영이 지나온 곳은 과거였다. 눈이 돌아갈 것만 같아 정신을 붙잡고만 있었다. 그리고 조금 숨돌릴 틈이 생기자 쏟아지는 감정은 분노였다. 그냥 자격지심이고, 피해의식이고. 순영도 잘 알았다. 근데 실제로 나같은 새끼들 피빨아서 노는 애들도 있을 거 아니야. 단촐한 짐을 거칠게 내려놓았다.
"계획은 있냐?"
"대충은요."
"설명해 봐."
왜 그렇게 급하게 구냐는 말에도 답을 종용했다. 이리저리 눈을 굴리던 민규가 은행이 보이는 창턱에 걸터앉았다. 이리 와 봐요. 손짓하고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 순영을 올려다 봤다. 확신을 요구하는 눈빛이었다. 순영은 대답 대신 도장을 찍 듯 입술을 찍어눌렀다. 짧은 입맞춤이 끝나자 민규가 고딕풍 은행 건물을 가르켰다. 늦은 밤임에도 은은한 조명이 건물을 비추고 있었다.
일층은 고객들이 드나드는 곳이에요. 로비도 있고, 접수대, 여러 창구들이 있는, 우리는 여기에선 조용히 지나가야 해요. 이층도 마찬가지예요. 직원들이 업무를 보는 곳인데, 이층에 들릴 일은 없을 거예요. 저희가 처음 향하는 곳은 삼층. 삼층 중에서도 동쪽 끝 지점장실이죠. 지점장을 만나서 지하로 내려갈 거예요. 일반 엘리베이터에는 주차장으로 가는 길 밖에 없으니까. 자기들끼리만 쓰는 엘리베이터가 있을 거고, 우리는 그걸 이용해야 되는거죠. 순순히 알려줄까, 하는 얼굴이네요- 민규의 매끈한 웃음이 스쳐지나갔다. 흔들리는 잿빛 콧수염 앞에서 순영은 한숨ㅇ르 쉬었다.
"이 쪽, 여, 여기로 오세요."
떨리는 목소리가 공손했다. 순영은 민규의 얼굴 중 유일하게 드러나 있는 눈을 봤다. 어깨를 으쓱한다. 내가 말했죠? 하는 포즈였다. 약간의 감탄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쟤는 뭐 저런 걸 다 알지. 나름 서쪽의 중심부 지점을 맡고 있는데, 이렇게 간이 작은 사람이어서야. 은행장 동생이니까요, 낙하산. 민규가 속닥거리며 순영을 지나쳤다. 무릎까지 꿇은 콧수염이 고딕 책상으로 둘을 안내했다.
민규의 감시 아래 콧수염은 책상 밑으로 손을 뻗었다. 척 봐도 비상벨 같은 붉은 버튼으로 손가락이 다가가자 민규의 총구가 등에 박혔다. 새된 소리를 낸 콧수염이 그 옆 검은 번호키를 눌러댔다. 책상이 반으로 갈라졌다. 순영은 입이 떡 벌어졌다. 작은 계단이 나오고 곧장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콧수염을 앞장세워 지하로 향했다.
"순탄하기 짝이 없군."
"다 제 덕분이죠, 뭐."
"허, 맞는 말이라 반박도 못하겠네."
장난스럽게 말을 주고 받았다. 문이 열리고 펼쳐진 것은 거대한 금고들이었다. 민규는 능숙하게 금고 사이로 걸어들어갔다. 순영도 콧수염을 끌고 민규를 따랐다. 성큼성큼 금고를 살피던 민규가 한 금고 앞에 멈춰섰다. '그레이엄 도너' 순영이 고개를 갸웃했다.
"누구야?"
"제가 아는 사람 중에 두번째로 나쁜 사람이요."
"처음 듣는 이름인데."
민규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정신을 차린 콧수염만 경기를 일으켰다. 둘이 자신의 옷에서 찾은 마스터 키로 금고를 열고 돈을 옮겨 담는 동안 열심히 민규의 가려진 모습을 살폈다. 그레이엄을 저런 식으로 칭하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 밖에 없을 것이었다. 콧수염이 다 갈라진 목소리를 냈다.
"민규? 김민규?“
민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상으로 올라왔다. 잠깐의 총격전이 지나가고 둘은 미리 사 놓은 번쩍이는 세단에 올라탔다. 어리바리한 경찰들을 따돌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어쩐지 느슨하게 대응하는 것도 같았다. 은행을 털었다고 해서 나왔는데, 털린 건 금고 하나였으니 김이 빠질 만도 할 것이다. 순영은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입을 다물고 있는게 편했다. 민규도 같아 보였다. 말없이 도시를 벗어났다. 순영은 민규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다 생각했지만 민규는 그냥 입술만 깨물었다.
동이 터올 때까지 달리고 달렸다. 해가 정수리에 닿을 때 쯤 작은 마을에 다다랐다. 방을 잡고 돈이 담긴 가방을 확인했다. 두둑하게 차 있었다. 둘은 가만히 돈을 바라보기만 했다. 민규가 먼저 입을 열었다.
"화났어요?"
"화났냐고?"
"속인 건 죄송해요. 거짓말하기 싫었는데, 고든가 사람이라고 하면 안 도와줄 것 같아서."
"고든가 사람이라고? 무슨 소리야?"
"네?"
"엥?"
아까 짐이, 아니 그니까 그 콧수염이 저 알아봤잖아요. 제 의붓삼촌이에요. 민규가 더듬더듬 설명을 추가하자 순영이 입을 쩍 벌렸다. 어쩐지 롤스로이스! 무릎을 탁 치는 모습에 민규가 더 놀랐다.
"눈치 챈 거 아니었어요?"
"야, 아는 척 하는 것만으로 어떻게 알아 봐. 그리고 나 그때 돈 때문에 정신 없었어."
"화나서 오는 내내 말도 안 했잖아요."
"그거는 긴장도 풀리고, 너도 말 없길래."
"아, 아... 나는 또 형 화난 줄 알고...."
"화는 안 나고, 좀 신기하네. 자기 양아버지 은행이나 털고."
"복수하는 거예요."
순영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충격적인 발언을 못 들은 것마냥 짐을 풀었다. 허, 민규가 그런 순영을 어이없다는 듯 쳐다봤다.
"더 안 물어봐요?"
"더 말 하고 싶어?"
"아뇨, 그런 건 아닌데."
"그럴 것 같아서 안 물어봤어. 말하고 싶어지면 말해."
"....다음에 말할게요."
"그래."
순영이 흥얼거리는 콧노래에 맞춰 가방을 풀고 돈을 침대 밑에 숨겨넣었다. 간만에 여유롭게 저녁을 먹었다. 이번엔 어딘가 홀가분해진 표정의 민규가 술을 들이켰다. 순영은 거의 먹지 않았다. 헤헤실실 웃는 민규를 바라나 봤다. 방으로 돌아와 몸을 섞었다. 순영도 홀가분해졌다. 나란히 누워 다음 이야기를 나눴다. 별이 보일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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