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영혼을 위하여

 

 

포크가 접시에 비벼졌다기분 나쁜 소리가 났다제풀에 놀란 순영이 주변을 살폈다눈알이 매끄럽게 돌아간다정신 사납게 계란을 헤집는 순영을 신경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귀족 살인마 도주발견 즉시 사살 자리 할아버지의 신문이 팔랑거리며 넘어갔다순영을 심란하게 했던 글씨도 접혀들었다헤드라인이라니하루가 가기도 전에 수배가 내려졌다망할 귀족을 때리고 도망쳤다는 이유였다죽을 정도로 때렸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헤드라인이 났으니 죽은 거겠지귀족의 몸에 손이 닿는 것만으로도 손목이 잘리는  황량한 곳에서 상해는 중범죄였다모든게 흐트러진  곳에서 중범죄는 길을 걷다 총에 맞아 죽어도  범죄였다당장 혀를 씹으면 그나마  고생하고 뒤지는  아닐까씁쓰름한 커피가 독약 같았다고개를 숙였다잔뜩 흩어진 계란  소시지를 쑤셨다.

 

 

"안녕하세요."

" 씨발-"

 

 

깜짝이야뭐라도 먹어야지 싶어 쑤시던 소시지를 찍어올리는데  비어있던 앞자리에 반짝이는 미소를  남자가 앉아 있었다새카만 흑발머리가 갈라져 매끈한 이마를 드러냈다생글생글 웃는 얼굴이었다순영은 빠르게  속에 있는 나이프를 쥐었다여차하면 찌르고 도망가야 했다.

 

 

"호시호시 맞죠?"

"..."

"진짜다호시나랑 같이 다녀요."

 

 

무슨 헛소리야하는 표정으로 바라봤다남자는 지지 않고  밝게 웃었다뾰족한 이가 튀어나왔다꽃받침까지 하고 웃는 모습에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저는 민규고어쩌다 호시 수배지를 봤는데  사람이다 싶어서 찾아다녔어요절대로 경찰이나 그런  아니구 눈에 반했으니까호시 1 ."

 

 

순영은 여전히  속에 손을 넣고 있었다의심스러운 눈초리 역시 걷히지 않았다민규는 눈썹을 늘어트렸다어깨를 으쓱했다어쩔  없지중얼거리더니 다시 순영을 본다.

 

 

"증명해 볼까요?"

 

 

눈을 찡긋한 민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조금 혼잡한 가게 안의 시선들이 잠시 꽂혔다 도로 자리를 찾았다잠깐 순영의 의아한 얼굴을  민규는 목을 가다듬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그리곤 순식간에 -!

 

 

천장에 총알을 박았다.

 

 

또라이다순영은 직감적으로아니 너무 명쾌하게 느꼈다지금이라도 자리를 떠야했다어벙한 얼굴을 저었다정신을 차리려는데 상큼하게 뿌려지는 민규의 윙크에 다시 넋이 나가버렸다어이가 없어 텁텁하게 웃었다민규는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흩어진 굉음에 다들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다들  들어주세요~"

 

 

어울리지 않게 친절한 말투였다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한 채로 민규를 바라봤다움직이지 않는 팔들에 민규가 고개를 갸웃했다이번엔 벽에 걸린 그림을 향해 총을 쐈다다시금 확실한 총성과 유리의 파열음이 울렸다이번엔 빠르게 손이 올라갔다.

터벅터벅 계산대로 다가간 민규는 주머니를 뒤져 봉지 하나를 내밀었다총구는 여전히 벌벌 떠는 사람들을 향해 있었다.

 

 

"팔백 달러넣어주세요."

 

 

주문을 하듯 애교스러운 말투였다사색이었던 종업원의 표정이 애매해졌다손은 굼뜨게 움직였다민규의 총구가 돌아갔다총구가 자신을 향하자 종업원은 후다닥 낡은 포스기를 열려다 다시 민규를 마주봤다그리곤 손목을 붙잡았다.

 

 

"  있음  ."

"?"

"이런  처음해보지?"

 

 

당황한 민규는 잡힌 손목을 뿌리치지 못했다사람들은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손을 숙였다순영이 한숨을  내쉬었다자리를 털고 일어났다눈빛이 바뀌었다.

총알은 종업원의 머리 바로 옆을 지나갔다강하게 궤도를 그렸다벽에 박히자 금을 만들었다내려가던 손들은 죄다 다시 경직됐고종업원 역시 말을 잃고 손에 힘을 풀었다.

 

 

"얘는 못하지." 

 

 

순영은 뚜벅뚜벅 여유있게 걸었다건조한 목소리는 가게를 무겁게 만들었다계산대에 다다르자 눈빛이 더욱 차가워졌다민규마저 마른침을 삼겼다

 

 

"근데 나는 하거든."

 

 

느슨하게 잡혀있는 손을 거칠게 빼낸 순영이 손자국 남은 민규의 손목을 살폈다빨리 챙겨눈에 띄게 몸을 떠는 종업원에 순영이 손짓했다입술을 꾸욱  종업원이 묵직해진 종이봉투를 넘겼다팔백 달러까지는 없어요순영이 표정 변화 없이 봉투를 낚아챘다눈을 깜빡이던 민규가 순영의 팔을 붙잡고 가게를 나왔다

 

 

 

 

 

 

두둑해진 주머니를 잠군 민규가 순영을 이끌고 데려간 곳에는 새빨간 신형차 한대가 있었다씨발이거 롤스로이스 아니야운전석에 올라탄 민규가 당황한 순영에게 손짓을 했다주춤대던 순영은  너머에서 발소리가 울리자 거칠게 조수석 문을 열었다부와앙요란한 소리를 내며 차가 출발했다민규는 여유롭게 선글라스를 꺼내썼다.

 

 

"아쉬워요연습 많이 했는데."

 

 

칭얼대는 말투에 순영이 헛웃음을 뱉었다 죽을  했어또라이 새끼야한대 쥐어박으며 얘기하고 싶었지만 일단은 입을 다물었다롤스로이스에 괜히 기가 죽었다에이 자존심이 있지순영이 다시 얼굴을 굳혔다.

 

 

"누구야."

"아까 말했잖아요호시 팬이라고이름은 민규만나게 돼서 기뻐요진짜 보고싶었거든요."

 

 

어이가 없다못해 민규가 이상해 보이기까지 했다찡그린 눈으로 빤히 바라보자 다시 입술을 삐쭉 내민다 애교스러운 습관이다순영은 터져나오는 실소를 참지 못했다뜨거운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고개를 꺾자 붉어진 귓바퀴가 눈에 띄었다민규의 깎은 듯한 옆태를 살폈다.

구릿빛 피부에 검은 머리칼이 이마를 반쯤 덮었다입을 다물고 있으니 차가워보이는 미남이다눈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자꾸만 흔들리는 동공에 이번엔 실소 아닌 진짜 웃음이 튀어나왔다 웃어요오눈썹을  늘어트리고 울상을 짓는 얼굴에 알겠다며 손을 흔들었다파랗게 펼쳐진 하늘로 눈을 돌렸다뭉게 구름이 드문드문 찍혀있는게 꽤나 장관인 황야 풍경이었다늘어지게 하품을 했다옆자리의 수상한 미남이 신경쓰였지만왠지 긴장이 풀려버렸다차츰 잠에 빠져들었다.

 

 

 

 

순영과 같이 다니고 싶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는지 민규의  뒷자리에는 온갖 총기류와 무기등이 준비되어 있었다나보다 심각한 범죄자 아니야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날렸지만 민규는 자신이 모은 준비물에 스스로 뿌듯해하느라 바빴다결국 칭찬해 달라는 눈빛을 하고 자신을 보는 민규의 어깨를 툭툭 쳐주고 말았다

 

 

"그리고 라스베가스에 가는 거예요우리는 이제 은행 강도니까거기  은행이 있거든요."

"언제부터 우리야그리고 은행 강도라니."

"에이~"

" 은행 강도냐고."

"어차피 절도범이잖아요호시도 귀족 죽인  때문에 이름 날렸고나도 이제 호시 사이드킥인데짜잘하게  바에야   제대로!"

"굶어 죽지 않으려고 훔치는 거랑 같아?"

"굶어 죽지 않으려고 굶어 죽을 사람들 돈을 훔치고 싶어요?"

"...?"

"나라면 '고든네 은행들을 털겠어요재수없으니까."

 

 

고든이라 하면서부에서 가장  은행을 운영하는 이름난 은행가였다정확하게 말하면 거의 유일한 은행을 운영하는 사람이었다시원시원한 이목구비와 거대한 풍채를 자랑하는 고든의 얼굴을 모를 수는 없었다어느 마을을 가던 고든의 이름이 커다랗게 박혀있었으니까대출 이자는 터무니없이 비쌌고 돈들은 대부분 귀족들의 뒷주머니로 들어갔다어머니의 뺨을 내리치던 두툼한 귀족의 손을 떠올리자 순영은 목으로 뜨거움 것이 올라왔다순영의 눈가가 벌겋게 변한 것을 모르는지 민규는 태연히 되물었다.

 

 

"그렇지 않아요?"

"...그래그러자."

"?"

"하자고은행강도."

 

 

 라스베가스가 나올 때까지 이틀 정도를 달려야 했다차에서 지낼  있을까 싶었지만 민규와 민규의 롤스로이스는 만능이었다땡볕 아래 순영이 인상을 찌푸리자 트렁크에서  넓은 모자 두개가 나왔고해가 지고 날씨가 쌀쌀해지자 마법처럼 두툼한 담요를 꺼냈다아침이면 이미 고소하게 소시지 굽는 냄새가 풍겨왔다대체 그릴은 어디서 나온거야순영이 팅팅 부은 얼굴로 소시지를 우물거렸다그와중에 민규는 얼굴    같지 않아요따위의 이야기를 하며 후라이팬을 꺼냈다

담배와 음식을 구하러 작은 마을에 들리자 민규는 순영을 펍에 밀어넣었다장을 보고 올테니 말썽 피우지 말고 있으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낡은 바에 걸터앉은 순영은 어느새  눌러담긴 맥주잔을 들고 있었다오랜만에 먹는 술에요즘은 담배도  피웠다롤스로이스를 타고 달리느라 정신이 없기도 했지만 차를 멈추기만 하면 조잘대며 대화를 거는 민규 때문도 있었다단칼에 거절하고 멀리 가려하면 예의  삐쭉대는 표정으로 사람을 신경쓰이게 했다

 

 

"어디 멀리가나 보오."

"."

"어딜 가는진 모르지만 조심하쇼요즘 어딜 가도 좀도둑이나 강도가 판치니이번에 윌리엄스에서는 식당을  이인조도 있었다오오죽  데가 없으면 음식점을 털까하긴  사람들 보다야 귀족이나 무장경찰이 무서운 시대긴 하지." 

 

 

머리가 벗겨진 주인이  컵에서 뽀득뽀득 닦이는 소리가 났다윌리엄스에음식점이면나랑 김민규군적당히 잔을 들어 맞장구를  순영이 속으로 욕을 뱉었다하여간 김민규애가 충동적이어가지고는걔도 수배 내려왔을 수도 있겠는데잔을 내려놓자 반쯤 남은 맥주가 출렁댔다

 

 

"신문    있겠습니까."

"물론이지여기오늘 신문일세."

 

 

대강 다른 면을 훑는  하며 빼곡한 수배 목록을 살폈다귀족 살인마와 동행하니 금세 수배에 오를 터였다  얼굴들 사이에 잘생긴 얼굴을 찾아 눈을 빠르게 움직였지만 민규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아직 신상 수집을  했나요즘같은 시대에 사람 하나 찾아서 신문에 박아두는  어려운 일도 아닐텐데의아했지만순영에게도 갑작스러운 일이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갈까요-"

" 샀냐?"

 

 

문이 열리고 가벼운 발걸음이 순영의 뒤에 멈춰섰다허리를 숙여 얼굴을 들여보는 민규의 입을 다급히 막았다주인이 고개를 갸웃했다재빨리 능청을 떨며 맥주를 들이켜고 동전을 건넸다시원스레 인사하고 문을 나서자 순영이 한숨을 쉬었다.

 

 

"순영이 형이라고 불러동네방네 수배자 자랑할  있어?"

"아하죄송해요." 

 

 

죄송할  없고대충 대답했다민규가  짐을 나눠 들었다마을 나오기  순영은 잠시 벽에 기대 주머니를 뒤졌다누런 해가 무겁게 내려앉았다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뿜었다민규에게 먼저 가있으라 눈짓을 했다목으로 씁쓰름한 연기가 가라앉았다

 

 

 

 

순영은 빠르게 지나가는 창밖을 봤다한가로이 시트에 몸을 묻은 채였다붉은 대지와 시퍼런 하늘이 흐릿하게 스쳐지나갔다태어나서 처음 맞는 여유순영이 나른히 무너졌다라디오에선 민규가 흥얼거리던 팝송이 흘러나왔다조용하지 않은 노래임에도 분위기는 고요했다

 

 

"좋다."

"뭐가요?"

"편하잖아기분이."

 

 

민규가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다 순영을 봤다.

 

 

"그건 아마 형이 운전을  해서 그런  아닐까요?"

 

 

와핫웃음을 터트린 순영이 민규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머쓱하게 화답하려던 민규가 얼굴을 굳혔다요란한 엔진 소리가 더해진 탓이었다한산한 도로에서 주행자를 만나는 것이 어렵기는 했지만 민규의 반응은 심각했다.

 

 

"따라오는  같아요."

"요즘 수배자가 얼마나 많은데갑자기 경찰이 나설리가."

"그게경찰이 아닐... 아무튼 속도  올릴게요."

"그러던지."

 

 

민규가 부드럽게 악셀을 밟자 금방 속도가 빨라졌다살짝  창틈으로 바람 소리가 거셌다걱정도 많네속으로 중얼거리는데 하고  차창에 총알이 박혔다

 

 

"씨발?"

"말했잖아요따라온다고 쥐어요."

"좆도   하던 새끼들이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대."

 

허허그러게요어색한 말을 흘려낸 순영이 창문을 내려 백미러를 확인했다얼씨구바이크 두대에  한대네명인가많이도 왔다총을 꺼내 뒷좌석으로 넘어갔다.  

 

 

"이거 장전된 거지?"

"거기 리볼버만요."

 

 

실린더를 확인한 순영이 입술을 핥았다빠르게 따라붙은 경찰은  차창을 거덜냈다민규가 몸을 움츠렸다거센 바람이  안으로 몰아쳤다민규야신호 주면 꺾어나지막한 소리에 민규가 고개를 끄덕였다순영은 유연하게  몸을 돌렸다 일정하고 빠르게 연사된 총알이 바이크를 쓰러트렸다지금급하게 바뀐 위치에 순영을 향해 몰려들던 총알이 차를 스치고 지나갔다시트 안으로 몸을 숨긴 순영이 숨을 골랐다백미러로 쓰러진  연기를 뿜으며 구르는 바이크가 비쳤다쫄려 뒤지겠네

시트 너머로 고개를 살짝 내밀자 총알이 다시 날아들어왔다바이크  대가 없다몸을 숙이자 곧바로  차창이 박살났다에라이빠르게 팔을 뻗어 창을  총신을 붙잡았다총구에서 불꽃이 날리고 총알이 천장에 박혔다곧바로 순영의 총알이 총을  남자의 팔을 관통했다굵은 비명이 터졌다바이크는 도로 옆으로 밀려났다한번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차가 다시 한번 급하게 차선을 바꿨다밀려난 바이크의 바퀴에 총알이 맞았다바이크는 맥없이 뒤집어졌다.

 

 

" 괜찮아요?"

" 운전  하네."

 

 

 괜찮다벌겋게 피부가 부어올랐다너덜너덜한 손으로 리볼버를 장전했다순영이 다시 몸을 세웠다다섯발을 연사하자  창에 금이 갔다총알이 머리칼을 스쳐지나가자 순영은 몸을 숨겼다한숨이 떨어졌다차는 어떻게 세우냐중얼거리는 말에 민규가 핸들을 쥐었다.

 

 

"가까워지면 쏴요."

"?"

 

대답없이 민규가 브레이크를 밟았다속도가 급하게 줄었다도로 위로 타이어 깎이는 소리가 퍼졌다 꽁무니를 쫓던 경찰차는  범퍼가 산산히 찌그러졌다씨발람보르기니쏠리는 몸을 겨우 지탱하고 총알을 날렸다어깨와 팔뚝이정도면  쫓아오겠지순영이 다시 앞자리로 넘어오자 뒤가 너덜너덜해진 람보르기니가 다시 속도를 태웠다

 

 

 

 

해가 내려앉고 어둠 속을 달렸다민규는 내내 순영의 눈치를 봤다울상이었다가 무표정을 하려다가 다시 비맞은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지었다언제쯤 말을 걸지 기다렸다부딪히는 이야기는 없었다결국 순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  있냐?"

"...손이요."

"이거그냥 이렇게 두면 낫겠지."

 

 

대강 손수건을 둘둘 말아둔 왼손은 말은 안해도  쓰라릴 터였다괜찮다는  손을 훌훌 털었다살짝 찡그려지던 미간을  볼리가 없었다

 

 

"니가  그렇게 속상해 하냐 잘못도 아닌데."

" 잘못일 수도 있죠..."

"뭐래이쯤하고  자자너도 피곤할  아니야."

" 괜찮아요 먼저 자요."

 

 

저렇게 두고 어떻게 머리를 거칠게 긁적였다최대한 빨리 마을에 닿으려 달리는 것이 분명했다애써 웃어보이는 민규에 시트에 몸을 묻었다가 일으키기를 반복했다귀찮은데귀엽고신경쓰였다걱정하게 만들었다한숨만 하다 결국 민규의 오른손을 끌어다 잡았다손수건이 감긴 왼손으로 깍지를 꼈다얽힌  손이 단단하게 흔들렸다.

 

 

"나도 진짜 괜찮으니까 쉬다 ."

"그래도빨리  바르고... 구급약을  사놓을  그랬나봐요."

"나중에   나도 뭐라  하는데 지금  쓰러질  같거든저기다  대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차가 미끄럽게 도로 밖으로 몸을 움직였다민규는 시동을 끄고도 여전히 안절부절 못했다순영이 안전벨트를 풀어주고 시트까지 내려줬다담요하며 일어나려는  눕히고 담요까지 덮어줬다굿나잇 키스라도 해줘야 되나쓸데없는 말을 중얼거렸다민규의 얼굴이 붉어지는게 어두운 와중에도 눈에 띄였다 자라. - 자요눈을 몇번 끔뻑이다 잠들었다

 

 

 

 

 

 

시뻘겋고 시퍼래진 손에 소독약이 쏟아졌다순영은 인상을 썼다지금까지  얼굴 중에 제일 험악하다민규는 피식 터지는 웃음을 눌렀다벌벌 떨리는 손목을 붙잡고 꾸덕한 연고를 치댔다순영이 입술을 깨물었다민규가 키득대는 소리에 눈을 흘기기도 한다관자놀이에 송골송골 땀이 솟는 것은 알까발갛게 익은 피부에 민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더워요?"

"덥다더워죽겠네."

"에어컨 빵빵한데." 

 

 

거짓말은 아니었다민규가 잡은 방은 좁지만 알찼다새하얗고 푹신한 침대라던지 깨끗한 바닥이 그랬다티비는 작았다손바닥 두개만한 크기였다천장이 낮고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다는게 흠이라면 흠이었다좁은 골목을 거쳐 와야하는 곳이라 그랬다민규의 손이 얇은 거즈를 덧댔다작은 손바닥에 고정시켰다

 

 

"이제 얼굴 펴요."

"...고맙다."

 

 

엉성하게 시작하더니  그럴듯한 모양새로 마쳤다민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바지의 무릎 부분이 하얗게 변해있었다미안한 마음에 덩달아 침대에서 엉덩이를 뗐다

 

 

"어디 가게?"

"아뇨어디 갈래요?"

"글쎄저녁 먹으러 갈까?"

"그래요."

 

 

민규가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약봉투를 정리하고 점퍼를 걸쳤다날이 어둑어둑해졌다저번 마을 보다는 번화한 거리가 펼쳐졌다은은한 조명이 눈에 띄었다사람이 많아지자 걸음도 빨라졌다대충 아무 가게를 골랐다선셋 시티미국 서부에서 선셋이라니우습다씁쓸한 입꼬리가 올라갔다문을 열자 종이 맑은 소리를 냈다.

 

 

 

어두운 가게에 퍼런 조명이 돌았다음식점이라기 보단  분위기였다어쩔  없이 맥주를 시켰다치즈를 끼얹은 치킨은 들고 뜯기 좋았다술이 들어가기도 좋았다순영은 금방금방 잔을 비웠다천천히 마시라는 말도 그닥 도움이 되지 않았다가게를 나올 때쯤 순영은 꽐라가  있었다순영을 부축해 나온 민규가 곤란한 얼굴을 했다.

 

 

"순영이 ."

"."

"걸어봐요."

"."

 

 

방으로 돌아올 때까지 순영은  늘어진  민규에게 기대 있었다침대에 순영을 올려놓았다밥을 먹으며 무슨 얘기를 했는데 죄다 헛소리였다그니까 세상 한탄 비슷한 거였다반쯤 눈을 뜨자 자신을 내려다 보는 민규와 눈이 마주쳤다까만 앞머리가 쏟아지는  같았다이렇게 봐도 잘생겼냐한탄거리가 늘었다

 

 

"씻고 올게요."

"으응."

 

순영이 불긋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욕실로 걸어가는 민규의 뒤태를 뚫어져라 쳐다봤다눈이 핑핑 돌았다 이렇게 취기가 오르는지   없었다일어서려 침대를 짚었다씨발손바닥이 욱씬거리며 열을 토해냈다우당탕 소리를 내며 미끄러졌다민규가 놀란 얼굴을 내밀었다엉덩방아를 찧은 모습을 보곤 종종 걸음으로 왔다

 

 

"괜찮아요?"

 

 

씨발... 괜찮아요소리를  번이나 하는지짜증나게짜증나게짜증나게 고마웠다그냥 짜증만 났는데 고맙고 귀여워서 짜증이  났다씨발씨발주저앉은 채로 중얼거렸다고개를 들자 민규가 쭈그려 앉아 순영을 보고 있었다심통 가득한 얼굴을 뚫어져라 봤다.

 

 

" ."

"미안해요."

"갑자기 뭐어래."

"손이요미안해요."

"진짜 뭐라는지 하아나도 모르겠거든."

"그냥  미안해요."

"됐어그냥 자라아."

 

 

 앞에서 사과만 쏟아내는 입이 그렇게 얄미울  없었다영문도 모르고 사과받는 사람 입장도 생각해 줘야지이투정부려도 민규는 눈만 깔았다속눈썹이 떨어지는게 예뻤고  처진 얼굴에서도 보이는 볼이 귀여웠다잘생겨가지고순영은 눈을 깜빡였다눈을 뜨니 민규의 턱을 잡고 있었다가까이서 보니까  잘생겼네 생각없었는데 분위기가 잡혔다민규가 눈을 감길래 키스했다 뿐이었다

 

 

 

 

벗은 몸으로 일어났다민규가 깨지않게 조심조심 침대를 벗어났다휑한 어깨 위로 이불을 덮어주고 티랑 바지만 꿰어입었다별다른 생각이 들거나 하지는 않았다취했고잤고그래서 달라질게 있나머릿속의 순영이 어깨를 으쓱했다

좁은 골목으로 나가 담배를 빼어물었다열심히 연기를 뿜었다햇살이  뜨거운데  햇살조차 고개를 디밀지 못했다칙칙한 벽에 기댔다 걸음만 걸어도 햇살이 대지를 달구는데 순영과 골목은 다른 시간을 살았다얇은  너머로 우당탕 소리가 들렸다문고리를 잡기만 했는데 문이 열렸다민규가 허리랑 머리를 잡고 나타났다.

 

 

"  담배담배 냄새 들어가 있어."

"괜찮아요."

 

 

황급히 담배를 비벼 껐다괜찮대두꿍얼거리는 말은 귓등으로 넘겼다 걸음 옮기는데 다시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아픈데 넘어지기 까지 하고머리 부딪혔어요투정끼가 잔뜩 묻어나 순영은 그저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몇마디를 나누다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다시 문을 나선 둘은 새카만 선글라스를  채였다.

 

 

 

 

새차를 샀다파란색 똥차였다눈에  띄는게 좋고어차피 라스베가스에 도착하면 버릴 차였다 곳에는 민규가  놓은 차가 있댔다순영은 잠시 의문이 생겼지만 롤스로이스부터 짚고 넘어가기는 귀찮았다똥차는 털털대는 구린 승차감을 선사했다도로에서 멈춰서기도 했다한산하다 못해 쥐새끼도  보이는 도로라 망정이었고둘에겐 조금 좋은 일이기도 했다

몸이 솔직해지면 마음도 솔직해진다보통 반대의 순서를 지나지만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순영은 잠시 멈춰선  안에서 민규와 혀를 섞으며 생각했다질척한 소리가 나면 의식하듯 속눈썹이 팔랑거렸다순영은 종종 눈을   떨리는 속눈썹을 확인했다무슨 생각인진 모르겠는데 민규도 가끔 눈을 떴다그렇게 동시에 눈을 뜨면 누가 먼저랄  없이 손깍지를 꼈다손도 키스하듯 야하게 비볐다도로 위에서 그렇게 키스했다

 

 

"근데 선글라스는 뭐냐이제 차탈 일도 없는데"

"필요해질 걸요."

 

 

키스하기  벗긴 민규의 선글라스를 건네주며 말을 꺼냈다모호한 대답에 순영은 고개를 미간을 좁혔다선글라스를 들여다봤다아무래도 별로지대시보드에 까만 선글라스를 던져놨다민규가 콧방귀를 뀌었다태연하게 샌드위치를 까서 입에 넣어주자 금방 입꼬리를 올리긴 했다

 

 

 

 

어둠이 들이찬 도로를 달렸는데 도착한 곳은 빛의 도시였다순영은 눈에 가득 꽂히는 불빛들에 인상을 찌푸렸다불빛도 불빛인데 사람도 많았다거의 지나온 길의 모래알 만큼 많았다민규가 어깨를 으쓱했다순영은 입술을 삐죽이며 선글라스를 썼다알아볼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다만은공연히 투덜댔다

혼잡한 거리를 민규는 망설임도 없이 걸었다그런 민규의 꽁무니를 쫓으며 순영은 화려한 거리를 구경했다거대한 광대 모형이 코에 불을 붙이고 건물을 밝혔다어디든 네온사인이 번뜩였다뜬금없는 야자수에도찰랑이는 인공 강물 속에도심지어는 교통안내로봇도 빛을 걸치고 있었다지나온 마을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모양새였다민규는 계속 긴다리로 휙휙 걸어갔다고든 은행  으리으리한 호텔에 방을 잡았다

 

 

"어때요 라스베가스."

"어떻긴 똑같지."

"완전 허세."

 

 

입은 웃었지만 사실 어질어질 했다이게 현대고 순영이 살던순영이 지나온 곳은 과거였다눈이 돌아갈 것만 같아 정신을 붙잡고만 있었다그리고 조금 숨돌릴 틈이 생기자 쏟아지는 감정은 분노였다그냥 자격지심이고피해의식이고순영도  알았다근데 실제로 나같은 새끼들 피빨아서 노는 애들도 있을  아니야단촐한 짐을 거칠게 내려놓았다.

 

 

"계획은 있냐?"

"대충은요."

"설명해 ."

 

 

 그렇게 급하게 구냐는 말에도 답을 종용했다이리저리 눈을 굴리던 민규가 은행이 보이는 창턱에 걸터앉았다이리  봐요손짓하고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 순영을 올려다 봤다확신을 요구하는 눈빛이었다순영은 대답 대신 도장을   입술을 찍어눌렀다짧은 입맞춤이 끝나자 민규가 고딕풍 은행 건물을 가르켰다늦은 밤임에도 은은한 조명이 건물을 비추고 있었다

 

 

 

 

 

 

일층은 고객들이 드나드는 곳이에요로비도 있고접수대여러 창구들이 있는우리는 여기에선 조용히 지나가야 해요이층도 마찬가지예요직원들이 업무를 보는 곳인데이층에 들릴 일은 없을 거예요저희가 처음 향하는 곳은 삼층삼층 중에서도 동쪽  지점장실이죠지점장을 만나서 지하로 내려갈 거예요일반 엘리베이터에는 주차장으로 가는  밖에 없으니까자기들끼리만 쓰는 엘리베이터가 있을 거고우리는 그걸 이용해야 되는거죠순순히 알려줄까하는 얼굴이네요민규의 매끈한 웃음이 스쳐지나갔다흔들리는 잿빛 콧수염 앞에서 순영은 한숨ㅇ르 쉬었다.

 

 

" 여기로 오세요."

 

 

떨리는 목소리가 공손했다순영은 민규의 얼굴  유일하게 드러나 있는 눈을 봤다어깨를 으쓱한다내가 말했죠하는 포즈였다약간의 감탄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쟤는  저런   알지나름 서쪽의 중심부 지점을 맡고 있는데이렇게 간이 작은 사람이어서야은행장 동생이니까요,  낙하산민규가 속닥거리며 순영을 지나쳤다무릎까지 꿇은 콧수염이 고딕 책상으로 둘을 안내했다.

민규의 감시 아래 콧수염은 책상 밑으로 손을 뻗었다 봐도 비상벨 같은 붉은 버튼으로 손가락이 다가가자 민규의 총구가 등에 박혔다새된 소리를  콧수염이   검은 번호키를 눌러댔다책상이 반으로 갈라졌다순영은 입이  벌어졌다작은 계단이 나오고 곧장 엘리베이터가 보였다콧수염을 앞장세워 지하로 향했다

 

 

"순탄하기 짝이 없군."

"  덕분이죠."

"맞는 말이라 반박도 못하겠네."

 

 

장난스럽게 말을 주고 받았다문이 열리고 펼쳐진 것은 거대한 금고들이었다민규는 능숙하게 금고 사이로 걸어들어갔다순영도 콧수염을 끌고 민규를 따랐다성큼성큼 금고를 살피던 민규가  금고 앞에 멈춰섰다. '그레이엄 도너순영이 고개를 갸웃했다

 

 

"누구야?"

"제가 아는 사람 중에 두번째로 나쁜 사람이요."

"처음 듣는 이름인데."

 

 

민규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조금 정신을 차린 콧수염만 경기를 일으켰다둘이 자신의 옷에서 찾은 마스터 키로 금고를 열고 돈을 옮겨 담는 동안 열심히 민규의 가려진 모습을 살폈다그레이엄을 저런 식으로 칭하는 사람은 세상에    밖에 없을 것이었다콧수염이  갈라진 목소리를 냈다

 

 

"민규김민규?“

 

민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상으로 올라왔다. 잠깐의 총격전이 지나가고 둘은 미리  놓은 번쩍이는 세단에 올라탔다어리바리한 경찰들을 따돌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어쩐지 느슨하게 대응하는 것도 같았다은행을 털었다고 해서 나왔는데털린  금고 하나였으니 김이 빠질 만도  것이다순영은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입을 다물고 있는게 편했다민규도 같아 보였다말없이 도시를 벗어났다순영은 민규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같다 생각했지만 민규는 그냥 입술만 깨물었다

동이 터올 때까지 달리고 달렸다해가 정수리에 닿을   작은 마을에 다다랐다방을 잡고 돈이 담긴 가방을 확인했다두둑하게  있었다둘은 가만히 돈을 바라보기만 했다민규가 먼저 입을 열었다.

 

 

"화났어요?"

"화났냐고?"

"속인  죄송해요거짓말하기 싫었는데고든가 사람이라고 하면  도와줄  같아서."

"고든가 사람이라고무슨 소리야?"

"?"

"?"

 

 

아까 짐이아니 그니까  콧수염이  알아봤잖아요 의붓삼촌이에요민규가 더듬더듬 설명을 추가하자 순영이 입을  벌렸다어쩐지 롤스로이스무릎을  치는 모습에 민규가  놀랐다



"눈치   아니었어요?"

"아는  하는 것만으로 어떻게 알아 그리고  그때  때문에 정신 없었어."

"화나서 오는 내내 말도  했잖아요."

"그거는 긴장도 풀리고너도  없길래."

"... 나는   화난  알고...."

"화는  나고 신기하네자기 양아버지 은행이나 털고."

"복수하는 거예요."

 


순영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충격적인 발언을  들은 것마냥 짐을 풀었다민규가 그런 순영을 어이없다는  쳐다봤다

 

 

"  물어봐요?"

"  하고 싶어?"

"아뇨그런  아닌데."

"그럴  같아서  물어봤어말하고 싶어지면 말해."

"....다음에 말할게요."

"그래."

 

 

순영이 흥얼거리는 콧노래에 맞춰 가방을 풀고 돈을 침대 밑에 숨겨넣었다간만에 여유롭게 저녁을 먹었다이번엔 어딘가 홀가분해진 표정의 민규가 술을 들이켰다순영은 거의 먹지 않았다헤헤실실 웃는 민규를 바라나 봤다방으로 돌아와 몸을 섞었다순영도 홀가분해졌다나란히 누워 다음 이야기를 나눴다별이 보일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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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자부 자주 겪는 순 × 시간 돌리는 능력 가진 밍으로 밍이 시간 돌릴 때마다 데자부 겪는 순 

 원래 데자부를 잘 느끼는 체질인 순 근데 근래 들어 갑자기 늘어난 데자부 양에 좀 짜증이 났다 그래서 원인을 찾으려고 데자부를 딱 느끼면 주변을 둘러보는데 항상 익숙한 풍경인 와중에 밍 하나만 다른 행동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닫겠지

 짜증날 정도로 늘어난 데자부에 순 결국 밍 찾아가서 따지는데 그 순간에도 익숙한 느낌 들어버리고 주변 쓱 훑으니까 바람불고 낙엽 쏟아지는 것까지 언뜻 기억남 대충 감 잡은 순 뻔뻔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밍에게 묻는다 몇 번째냐 이 대화는

당황한 밍 순간 표정 무너지고 다시 되찾지만 순 이미 포착하고 추궁함 시간 되풀이하는 거, 맞지? 밍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부인하지만 이미 땀 뻘뻘이다 순 됐으니까 작작 돌리라고 같은 시간 반복되는 거 기분 찝찝하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가버림

 남은 밍은 얼떨떨 밍이 시간을 돌린다는 걸 눈치챈 최초이자 유일한 사람이었음 관심이 안 생길리 × 그 뒤로 밍 빠르게 순 찾아가 인정하고 근데 형은 어떻게 알았냐 형도 뭔가 특별한 사람이냐 물으며 쫓아다님

 전학왔다면서 형이래 수녕 1년 꿇었다 하자<< 암튼 그 뒤로 생긴 밍의 취미는 시간 돌리고 순 살피기임 보통 열에 여덟은 그 날렵한 눈으로 흘겨본다 그 때마다 밍 이유 모르겠지만 기분 째짐 그러다 밍 결정적으로 순한테 빠지는 일 생긴다

 둘이 같이 하교하다가 다친 강아지 보고 병원 데려가는데 병원 가는 도중에 죽게되고 밍 시간 돌려서 강아지 보자마자 들고 냅다 뜀 몇 번을 반복해도 강아지는 못 살리고 밍 열 번째 시간 돌리고는 강아지 보자마자 훌쩍 울어버리겠지

 순 전후 상황 모르지만 데자부 느껴지고 말없이 밍 다독여줌 생각해보니 순은 자기가 시간돌리고 설명없이 강아지 안고 달릴 때마다 순은 계속 아무것도 묻지않고 같이 뛰어줬음 새삼 자길 약간이나마 이해해줄 사람이 생겼다는 생각에 더 울컥함

 그 때부터 생긴 또 다른 취미 대화하다가 뜬금없이 형 좋아해요 하고 시간 돌려버리기 순은 데자부 느껴지니까 야 또 뭐냐 하는데 밍 그냥 웃으면서 이상한 핑계대고 넘어감 한 번도 순의 대답 들은 적은 없음 당연히 어떤 대답일지 두려워서임

 하루는 그렇게 좋아해요 해놓고 시간 돌리려는데 그 잠깐 순간에 눈 마주친다 순의 표정 안타까움과 화남 슬픔이 섞인 오묘한 표정이라 20초 전으로 돌아온 밍도 덩달아 복잡해짐 그리고 어쩌면 순이 모르는 척 하는 걸 수도 있다고 생각하겠지

 그래서 그 취미는 버린다 생각해보면 밍이 고백한 모든 미래는 삭제되었으니 순이 눈치챌 일 전혀 없음에도 사랑에 빠진 밍은 모든 감정들이 커진 상태고 걱정과 불안도 마찬가지였음 튼 순의 입장에선 짤막한 데자부들 사라지니까 좋다고 칭찬해줌

밍 괜히 고백에 대해 부정적으로 느낀다 생각하고 투덜거리겠지 사람 마음도 모르고 그렇게 좋아요? 순 그 말에 대답한다 네 맘은 모르지만 요즘 니가 시간 돌릴 때마다 왠지 복잡해진다고 어떤 미래에서 돌아오는진 모르지만 자꾸 슬퍼진다고

그 말 하면서 그 고백 들은 미래에서 했던 복잡한 얼굴을 하는 순에 밍은 불안해진다 정말 다시는 그런 장난 치지 말아야지 아니 이제 시간 돌리는 것도 그만하자 다짐하는 밍 불편하긴 하지만 시간 돌리면 그 표정 떠오르고 우울해지니까

그렇게 평범하게 지냄 밍은 여전히 순과 가까운 관계인게 너무 좋으면서도 가끔은 힘들겠지 그래도 요즘 줄이고 있냐며 웃어주는 순이 너무 좋으니까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사고는 또 하교길이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순 밍이 멈춰있으니까 안 오냐? 하고 돌아보는 순간 자동차와 부딪힘 아 샹 뒈져라 창의력 고자맨
밍은 정말 반사적으로 시간 돌린다 처음은 너무 당황해서 또 순 놓쳐버리고 다시 시간 돌려서 순 끌어오는데 성공하겠지

 그래도 피 흩뿌리는 순 두 번이나 본 밍 순 코 앞으로 지나가는 자동차 보고 그 자리에 주저앉음 순은 큰일날 뻔 했네, 하다가 순간 데자부 느끼고 돌아보면 역시나 몸 웅크린 밍이 있겠지

 순 충분히 짐작가는 상황에 근처에 밍 데려가 앉히고 진정될 때까지 토닥인다 떨림 잦아들고 고개들면 괜찮다 고맙다 해주지만 그래도 밍 차와 부딪히던 순이 자꾸 생각남

 떨림은 멈췄는데 고개를 못 드는 밍에 순 밍의 볼 감싸면서 형 괜찮아 고개 들어 봐하고 마주보게 한다 울어서 눈가는 불긋하고 촉촉함 순 순간 뭔가 쿵 하지만 뭔지는 모르겠지

 그와중에 밍은 마주친 순 눈이나 볼 감싼 손길에 심장 마구 뜀 벅차는 마음에 진짜 순간적으로 형 좋아해요.. 해버리고 평소같으면 재빨리 시간 돌릴테지만 지금은 뭔가 멍해서 자기가 고백한 것도 뒤늦게 알아채는 밍 순도 덩달아 아무말 없이 있다가 빨개진 밍 얼굴보고 웃으며 묻는다 몇 번째냐 이 고백은



+어찌저찌 이렇게 사귀게 된 후

권순영이 김민규 놀리려고 예전에 민규가 하던 것처럼 일상적인 대화 중에 햄찌웃음 지으면서 좋아해 하는데 민규 허억 너무 귀여워 하며 좋아서 시간 돌린다 한 다섯 번 정도 다시 듣고 만족해서 안 돌리는데 순영 존나 피곤한 표정으로 그냥 더 말해줄게 시간 좀 돌리지 말자,,, 같은 맥락으로 스킨쉽 와중에도 계속 시간 돌려서 고통받는 권순영

떡 위해서 여러 방법 시도하는 데도 이용되는 시간 돌리기 
-라면 먹고 갈래요?
-우리 방금 저녁 먹었잖아
>>딱<<
-형 오늘 혼자 있기 싫어요
-그럼 우리집 갈래 어머니가 너 보고싶어한다
>>딱<<
-형 우리 할래요?
-(저멀리서) 얼른 들어가 형 가볼게~
-안해안해

막상 떡 칠때는 시간 한 번도 안 돌리겠지 이건 뭐 어쩌면 당연해 이거 해줘 저거 해줘 당당하게 하는 민규니까 굳이 시간 돌려서 다시 겪을 필요 없을 듯 오히려 담날 아침에 쩌는 행복에 자꾸만 시간 돌릴 것 같다 눈을 떴는데 순영이 형이 잇잔아ㅠㅡㅠ(딱) 완전 잘생겼잖아ㅜㅡㅜ(딱) 잠 깬 순영이 어리둥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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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빛의 낡은 선풍기가 탈탈탈 힘겨운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버릴 때가 됐나. 삐그덕거리는 고개가 퍽 안쓰러워 보인다. 창 밖에서는 끝물 여름의 매미 소리가 들려왔다. 종아리께를 데우는 강한 햇빛에 슬슬 짜증이 밀려온다. 가슴팍에 놓인 책을 다시 들어올릴 기운도 없는 순영은 그대로 고개를 뉘였다.
 픽- 선풍기에 임종이 찾아왔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무엇보다 당장 너무 솟기 시작하는 비지땀에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부채를 찾으려 몸을 일으켰다. 옆 집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린다. 이사 온다 했었나. 턱 끝으로 모인 땀을 닦아냈다.
 겨우 찾아낸 부채는 손바닥만한 헬로키티 부채였다. 시끄럽게 헐떡대기만 하고 시원하지도 않아 부채를 든 손에 힘을 풀었다. 옆 집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계속해서 들려오는 드릴소리에 눈을 감고 인상을 찌푸렸다. 더위에 쪄서 죽거나 스트레스 받아서 죽거나, 순영은 적어도 사인 중 하나는 제거하고 싶은 마음으로 문을 나섰다.

 후덥지근한 공기가 안과 다르지 않았다. 곧바로 옆집 문 앞에 서 초인종을 눌렀다. 이사 중이라 당연히 문이 열려 있을 줄 알았는데. 순영이 땀에 젖어 촉촉해진 머리를 쓸어올림과 동시에 문고리가 돌아갔다.

 

"어, 안녕하세요!"

 

 서글서글 잘생긴 얼굴이 뾰족한 이를 드러내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갑작스럽게 햇빛을 맞은 기분이다. 어색하게 한 두발 뒷걸음질 친 뒤에야 입술을 달싹이며 말을 꺼내려 했지만 그마저도 남자의 살가운 제안에 먹혀들었다.

"헉, 땀 좀 봐. 옆집 사시죠. 더우시면 들어왔다 가실래요? 방금 에어컨 설치 끝났는데."

 앞뒤없는 선행에 놀라기 보다는 에어컨이라는 말에 혹했던게 사실이었다. 뒷목을 만지작 거리던 순영은 남자가 문을 열자 흘러나오는 냉기에 홀리듯 안으로 들어갔다.

 

 

 

 

 이름은 김민규, 스무살. 어려보인다 했더니 진짜 애였다. 얼음이 동동 담긴 컵에 담겨오는 오렌지 주스를 보면 더 그랬다. 금방 나오려고 했는데 어떻게 저녁까지 얻어먹고 왔다. 첫 자취라면서 요리는 기가 막히게 잘했다. 겨우 벽 하나 두고 있는데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습하고 기분나쁜 공기가 팔에 닿았다. 빨리 자고 내일 아침 일찍 선풍기나 사러 가야겠다. 시원한 물로 짧은 샤워를 마치고 자리에 누우며 생각했다. 근데 김민규네 집 돈 많나보다. 에어컨 설치는 둘째치고 하루종일 틀어놓다니, 요즘 누진세가...

 

"흐응, 핫, 잠깐.."

 

누진...

 

"하, 천천히, 하앗!"

 

세가...

 

"좋아, 응, 흐..."

 

 곱게 감겼던 눈이 번쩍 떠졌다. 시발, 스무 살이라며! 아니 그것보다, 게이였어? 농염한 신음을 뱉는 저 목소리는 분명 오늘 낮에 살갑게 말을 걸었던 그 목소리였다. 놀랄 포인트가 너무 많아 그 새 정신이 말똥말똥해졌다. 방음 좆도 안 되네... 벽 너머에서는 공기반 소리반의 자극적이고 능숙한 소리가 퍼졌고, 순영은 애써 눈을 꾹 감아 잡생각이 피어오르는 걸 막을 수 밖에 없었다. 김민규의 파트너는 나쁘지 않은 정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도 씨발,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빨리 싸고 끝내주시면 안되냐?

 

"흣, 하아, 흐응, 응.."
"아, 흣, 김민규..!"

 

 이름을 부른 타이밍이 절정의 순간이었는지 신음소리가 멎었다. 한 숨을 쉰 순영이 뒤척거리던 몸을 편하게 뉘였다. 낮게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둘이 꼭 껴안고 잠에 들겠지. 드디어 순영도 원하던 쾌적한 환경에서 잠에 들 것 같았다.

 

"하, 으읏, 또, 하게?"

 

 김민규의 2라운드 선언과 같은 말이 떨어지고, 순영은 머리를 베개로 감쌌다. 질식의 위험은 감수할 수 있었다. 한 방에서는 쾌락의 눈물이, 한 방에서는 짠내나는 눈물이 흘렀다.

 

 

 

 

 

 결국 예정에 없던 늦잠을 자버렸다. 사실 매일 그랬지만 어제처럼 일찍 자리에 누운 날에 이렇게 무거운 기상은 처음이었다. 대충 모자를 눌러쓰고 근처 전자상가를 검색하며 문을 열었다. 쨍한 오후햇살에 잠시 인상을 찌푸리는 동안 옆 집의 문도 열렸다. 아, 잠시만. 빠르게 걸음을 옮겨 봤지만 복도가 너무 길었다.

 

"형! 어디 가세요?"
"어, 뭐 살 거 있어서."
"뭐 사시는데요? 상가 가시는 거면 요 앞 사거리까지 같이 가요!"
"선풍기 고장나서. 나는 후문으로 갈 것 같은데."

 

 엘리베이터에 탄 순영이 더위에도 불구하고 모자를 더 눌러썼다. 언뜻 본 김민규의 얼굴은 반질반질하니 밤을 잘 보낸 얼굴이다. 산뜻한 무늬의 하와이안 셔츠가 시야에 어른거릴 때마다 어제의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아 글쿠나... 저 집에 있을 땐 저희 집 오세요. 에어컨 틀고 같이 놀아요!"
"어... 고맙다."

 

 너랑 뭘 하고 놀아. 몸의 대화를 나누지만 않으면 다행이지. 눈물을 머금고 어정쩡하게 대답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황급하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우리 아파트는 방음이 잘 안되니 조심하라는 말이 계속 입가에 맴돌았지만 순영의 혀는 우리도 채 발음하지 못하고 입술만 축였다.
 사실 평소의 순영이라면 거리낄 것 없이 조용한 섹스를 요구할 수 있었겠지만 왠지 민규에게는 그러기 힘들었다. 분명 당황해서는 한껏 눈썹을 늘어뜨리며 울상을 지을 것 같았다. 순영의 기분이 꿀꿀해졌다. 해맑은 스무 살 게이에게 조심스러워지는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 후로도 한 주에 두세번 정도 건강한 섹스 라이프를 즐기는 민규 덕분에 순영은 고음질 이어폰을 장만하게 되었다는 것 말고는 큰 변화없는 일상이었다. 살가운 민규는 여전히 빵빵한 에어컨 바람을 내걸며 순영을 초대했고, 순영이 염치를 고민하기도 전에 데려오기를 반복했다. 오늘 저녁은 카레인지 벌써 냄새가 솔솔 풍겼다. 남자친구가 좋아하겠네. 별 실없는 생각을 하는데 문득 잊고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야 민규야!"
"네?"
"너 애인 있는데 나 여기 있어도 되는 거냐?"
"갑자기 왜요? 그리고 저 애인 없는데?"
"뭐? 그럼 너 누구랑..."

 

 순간 말을 멈춘 순영에 민규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돌아봤다.

 

"네?"
"아, 아니야. 그냥 너 잘생겨서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했나봐."
"그래요?"

 

 민규는 잘생겼다는 말에 기분이 좋은지 헤헤 웃으며 다시 냄비에 집중했다. 어설프게 위기를 넘긴 순영은 오히려 복잡해졌다. 애인이 아니면 누군데? 애인도 아닌데 섹스를 한다고? 저녁을 차리는 싹싹한 얼굴이 갑자기 멀게 느껴졌다.

 

 

 

 

 놀랍게도 그 날 이후로 단 한번도 섹스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요즘 들어 이명이 잦아져서 고민이었던 순영에게는 반가운 일이었다. 다만 하루가 다르게 기운이 빠져가는 민규가 신경쓰이기 시작했다는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집으로 찾아가면 여전히 반갑게 맞아주기는 했지만 직접 부르는 경우는 사라져 소멸됐던 염치가 되살아 나기도 했다. 때문에 아직도 사그라들지 않는 더위에 고통받으면서도 차마 그 초인종을 누르지 못하게 됐다는 얘기였다. 낮의 시원함과 밤의 쾌적함의 공존이 불가능 하다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쩌면 눈치를 챘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섹스 소리를 들었다는 걸 알아채고 부끄러움에 시들시들해지는 것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헤어졌나? 그 날을 기점으로 만남도 없고 기운도 없으니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게이 커플이니 쉽게 털어놓을 수도 없었을 테고. 순간 순영은 정의감 비슷한게 불타오르는 게 느껴졌다.. 아직 해가 지기 전이었다. 지갑을 챙긴 순영이 밖으로 나가 초인종을 눌렀다.

 

"어, 형 안녕하세요..."
"저녁 약속 없지?"
"네, 안 그래도 돈까스 하려고.."
"나랑 술 마시러 가자."
"네?"
"준비하고 나와."

 얼떨떨한 얼굴을 하고도 고분고분 옷을 갖춰입고 나온 민규를 근처 고깃집으로 이끌었다.

 

 이른 저녁이라 한산한 가게 안에서 민규는 열심히 고기를 구웠다. 자리에 앉자마자 우다다 주문을 마친 순영은 왠지 비장한 얼굴이었다. 민규가 접시에 올려주는 고기도 마다하고 계속 술잔을 들이키면서도 그 예리한 눈빛이 민규에게 무언갈 요구하는 듯 했다. 결국 민규의 입이 먼저 떨어졌다.

 

"무슨 할 말 있어요?"
"먹어."
"네?"
"많이 먹으라고. 내가 사는 거니까."

 

 민규는 물론 다른 누구도 몰랐겠지만 이건 순영 나름의 위로였다. 다만 알 수 없는 의무감에 휩싸인 순영이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바람에 위로 대상인 민규가 눈치를 보는 상황이 발생했지만 말이다.
 밖은 어느새 새까매졌다. 몽롱한 기운이 홧홧하게 올라온 순영은 간간히 술잔을 드는 민규를 바라만 봤다. 순영은 민규가 취하길 바랬다. 불순한 의도라기 보다는 편한 관계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술에 취해 속얘기를 해주길 바랬다. 그런 순영이 간과한 것은 자신의 주량과 민규의 주량. 갓 스무 살은 섹스도 잘했고 술도 잘했다.

 

"형 취했다. 이제 갈래요?"
"아니, 좀만 더 먹어..."
"아, 형 귀여워요."

 늘어진 말투를 따라하며 웃는 얼굴에 순영의 기분이 상했다. 알딸딸한 기운은 사람을 유치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너어, 요즘 왜 글케 기운이 없냐...?"
"저 기운 없어 보여요?"
"응.. 졸라..."
"그렇구나. 그거 때문에 고기 사주는 거네요, 그럼."
"음, 근데 궁금한 거도 있어..."
"뭔데요?"
"애인 없다면서 누구랑 그렇게 섹스해...?"

 

 미친, 말이 끝나는 순간 순영은 자신의 말에 술기운이 달아났다. 민규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난처한 듯 하면서도 태연한 얼굴이었다.

 

"음, 그냥 파트너... 자주 바꼈는데 몰랐어요?"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아, 존나 쪽팔려. 왜 넌 멀쩡한데 내가 민망하냐."
"형 들으라고 내는 거였으니까. 근데 또 애인 있다고 착각할게 뭐예요."
"뭐?"

 

 이제 진짜로, 완전히 술이 깼다. 김민규는 여전히 태연한 얼굴이었다. 폭탄 발언을 한 입술은 술을 홀짝이느라 바빴다. 잠깐 정적이 흐르고 다시 순영을 마주본 민규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저 좀 신경써달라고. 음, 쉽게 말하면 섹스 한 번 하자고 그런 건데 의외로 반응이 없어서 오기가 생기더라구요. 거기다가 이상한 오해까지 사고."
"너, 너..."
"그래서 말인데, 저 별로예요?"

 

 

 

 

 갓 스무 살은 섹스도 잘하고 술도 잘하고 키스도 잘했다. 민규의 마지막 말이 끝나자마자 순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급하게 계산을 하고 민규를 데리고 나왔다. 어둠이 깔린 거리까지 빠르게 걸어가더니 주변에 사람이 없어지자 급하게 입을 맞췄다. 시작은 순영이었지만 이끄는 건 민규였다. 알코올 냄새가 진하게 섞인 혀를 비비는 폼이 익숙한 것에 괜히 심통이 나는 걸 보면 아직 술이 덜 깬 것 같기도 했다. 입술이 떨어지고 침을 닦아내자 이번엔 민규가 더 급하게 순영을 이끌었다.

 

"야, 나 콘돔 없어."
"저 있어요."
"씨발, 그렇겠네."

 

 그래, 술이 덜 깬게 분명하다.

 

 

당연하게 김민규네 집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키스를 받아내면서 에어컨을 키는 폼이 꽤나 능숙해 우스우면서도 속이 조였다. 뒷걸음질 치다 침대에 누운 민규가 순영의 볼에 입을 맞추곤 몸을 일으켰다.

 

"씻고 와요."

 

 순영이 눈을 굴리자 볼을 잡고 웃더니 옷을 챙겨 순영을 욕실로 이끌었다.

 

"같이 하면 되죠?"

 

 미지근한 물을 뒤집어 쓰고도 잘생겼다. 순영이 잠시 민규의 외모에 감탄하는 동안 민규는 그 동그란 손으로 기둥 두 개를 맞잡고 한껏 야한 얼굴을 한다. 순영이 손을 올리자 고개를 젖혔다. 도드라지는 목젖이 야해 순영은 몸을 가까이 해 목을 핥아올렸다.

 

"응, 읏.. 하아.."

 

저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아닌 코 앞의 신음에 순영은 머리가 어질했다. 특유의 비음이 야한 자음을 얹어 흘러나오는 게 좋아 뻐끔대는 입술을 무시하고 목만 잔뜩 괴롭혔다. 목덜미에 검붉은 얼룩을 만들었다.

 

"키스, 키스 해달라고오.."

 

 쇄골에 입술을 대자 결국 투정섞인 말이 튀어나왔다. 억울한 목소리에 순영은 키득거리며 고개를 들어 입을 맞췄다. 진하다기 보다는 장난스러움이 다분히 묻어있는 키스였다. 입술을 부비며 쪽쪽대더니 핥고 빨아올리고 별 이상한 짓을 다하는데도 민규는 그저 좋다고 끙끙댔다. 서로의 배에 하얀 얼룩을 남기고 나서야 욕실에 들어온 목적이 씻기 위해서였음을 깨달았다.

 

 

 

 

 새까만 김민규의 뒤통수를 어루만지자 빨아올리는 힘이 강해졌다. 절로 튕겨지는 허리를 도톰한 손이 어루만졌다. 뻣뻣하게 몸이 굳었다. 망할 욕실을 벗어나자마자 무릎을 꿇고 늘어진 좆을 입 안에 담는 김민규에 순영은 어설프게 벽에 등을 대고 서 있었다. 내리깐 눈 마저 잘생겼다. 속눈썹을 건드리자 집중하라는 듯 허벅지를 톡톡치며 혀를 굴린다.

 

"흣, 야 됐어. 빼 봐."

 

얌전히 물리는가 싶더니 고개를 든다. 올려다보는 눈이 초롱초롱해 약간의 죄책감이 솟았다.

 

"입에 쌀래요? 아니면 얼굴?"

 

 그런 순영을 비웃듯 닳고닳은 말을 뱉는다. 보통 내숭이란 걸 떠는데 말이야. 자기애가 강한건지 원체 눈치보는 성격이 아닌지, 둘이 같은 말인가. 순영이 멍하니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니 눈을 맞춘 채로 다시 순영의 것을 입 안에 담았다. 딴 생각 하지말라는 투정의 의미였다.

 

"알았어, 알았어. 빼 봐."
"입, 얼굴."
"손, 꼬맹아."

 

멋들어진 미소를 짓는 얼굴을 밀어내고 직접 기둥을 문질러 사정했다. 뾰루퉁한 주제에 재빨리 휴지를 갖다 손을 닦아준다.

 

"옷 좀 빌려주라."
"에, 어차피 벗을 건데 왜요?"
"안 벗어. 그냥 자고 갈거야."
"안 해요?"
"응, 안 해."
"왜요?"
"나도 너 한 번 빼줘?"
"아니 그게 아니라 왜..."
"옷 갖다 줘. 자고 갈래."
"남자랑 처음이라서요? 나 잘할 수 있는데."

 

그래서야. 결국 하얀 티와 트레이닝 바지를 갖다바친 민규와 나란히 누웠다. 징징대던게 무색하게 빠르게 골아떨어진 민규의 눈가를 쓰다듬자 잘생긴 눈썹이 꿈틀댄다. 물을 맞으며 한 번 빼고 나니 쓸데없이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 술기운이 달아나 머리가 빠르게 돌았다.
 확실하지 않다는 거였다. 얘가 나랑 섹스를 하고싶은 건지, 아님 연애를 하고 싶은 건지. 확실한 건 순영은 민규에게 섹스 이상을 바랬다. 망할 호기심과 중첩되어 얄팍하게 느껴질 순 있겠지만 왠지 그런 마음이 들었다. 품으로 파고드는 민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얘는 잠버릇도 자기같냐. 까맣게 갈라진 앞머리를 넘기고 드러난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뭐든 잘하는 스무 살, 연애도 잘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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