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는 키가 크다. 우리 집 담벼락 너머로 잘생긴 얼굴부터 가슴 팍까지 죄 보인다. 건듯 나뭇가지에 이마를 얻어맞기도 했다. 향내로 가득한 봄날에 그렇게 이마를 맞으면, 붉은 빛이 도는 하얀 꽃을 머리칼에 얹고 우스운 얼굴이었다. 내가 보고 있다는 건 영영 모를 듯 주변을 훅훅 돌아보고 짓는 민망한 웃음조차도 정갈했다. 가무잡잡한 얼굴이 둥실둥실 떠다닐 때면 그 애의 이마를 동쳤던 가장이를 만지작 거린다. 그리곤 아직도 가림자 위에 있는 해를 다그친다. 얼른 내려가서 쉬어라, 그래야 나두 그 애를 보지 않겠니. 해는 덩그러니 말이 없다.



반짝이던 안녕



칼칼한 목은 몇 년째 달고 있어도 통 익숙해지지 않는다. 좁은 목구멍 사이에 거칠한 사포를 달고 하는 기침은 종국에는 빨간 꽃잎을 떨어트린다. 아직도 찬바람이 부는 것이었다. 귀 밝은 봉주 아주머니가 오기 전에 기침을 감추며 방으로 들어간다. 그래도 움트는 봄을 포기할 순 없어 대청마루를 향해 머리를 이고 문지방에 손을 포갠다. 까칠한 손등에 턱을 괴자 봄냄새가 어렴풋이 느껴졌다. 아, 좋다. 채 가시지 않은 겨울사이에 야트막하게 내려앉은 단내에 불편한 문턱 자리를 벼긴다.


코를 간질이는 보드란 느낌에 눈을 뜬다. 해가 저 서산에 동그랗게 걸쳤다. 그 애가 올 시간이다. 자세히 보니 뿌연 매지구름도 엉덩이를 살짝 내밀었다. 비가오려나. 촉촉하게 젖을 마당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잘 깨웠다, 요놈. 콧잔등에 손을 올린건 오래 보이지 않던 괴였다. 새하얀 털에 꺼멓구 포슬한 얼룩이 있다. 고새 얼마나 잘 챙겨먹은 건지 소담스레 살이 올랐다. 얘, 어느 집 인심이 그렇게 좋았니. 뒷목을 긁어주자 고롱고롱 소리를 내며 얼굴을 비벼온다. 한참을 그렇게 겨르로이 복작댄다. 퐁퐁 말간 털을 뿜어 코가 간질간질하다. 재채기가 나온다. 엣취! 작은 재채기에도 왕왕 울리는 골에 몸이 축 처진다. 힘이 빠진 고개를 들자 그 애가 있었다. 심지어 이 쪽을 보고 있다. 가직하게 마주친 눈에 부끄러움이 몰려온다. 콧물이 나지 않은 걸 위로 삼아야 할까. 재빨리 방에서 삐죽 나온 얼굴을 들였다. 온 몸이 홧홧 달아올라 목 뒤까지 뜨끈하다. 아직도 있을까. 눈을 내밀었다. 꽃순이 돋는 매화나무만 인사를 건넨다. 하나도 안 반갑다. 괜시리 마음이 갈랬다.


***


담벼락 위로 나타난 따수운 갈색 머리에 어제 일은 기억도 나지 않는지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어느 새 담벼락 중간 매화나무까지 닿았다. 다 좋은데 걸음이 너무 빠르다. 조 괴처럼 느릿하게 굴면 얼마나 좋을까. 담벼락 위에 느지막히 누워 하품하는 털뭉치는 세상만사에 관심을 긋고 살아가는 것 같다. 이렇게 잠깐 비추는 그 애의 콧대를 보려 끙끙대는 모습과는 다르게 말이다. 빗방울이 토독토독 떨어진다. 어제 보았던 매지구름이 드디어 망와에 닿은 모양이다. 하필 지금, 원망스럽기도 하다. 그 애의 발걸음이 더 빨라졌다. 차분한 머리가 촉촉히 젖어간다. 달음박질을 친다. 휭하고 사라져버린 모습에 아쉬워 고개를 쭉 빼어보자 거세진 비에 툇마루까지 물이 튀었다. 에구, 쫄딱 젖겠다.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어 얼굴을 고대로 빼놓구 있는데 그 애가 다시 달려온다. 비를 피할 곳을 찾으려 두리번대다가 담벼락을 넘어간 우리 집 매화나무가지 아래 쭈그려앉는다. 그래봤자 깨벗은 나무인데. 몸을 일으켜 신을 신었다. 철벅이는 물마를 밟으며 느루 걸어 다가간다. 쉴새없이 떨리는 마음에 찬 비가 끼얹어져 몸이 발발거린다. 뒷꿈치를 들고 아래를 내려다 보자 단정스런 정수리가 축축히 젖었다. 떨어지지 않는 입에 눈동자만 도닌다. 까슬한 입술이 달막거리기를 몇번, 겨우 입을 열자 흉하게 갈라진 목소리가 목을 디밀고 나왔다.

"들어와 있다가 가"

데굴데굴 굴러가는 눈알이 가년스러워 보일 것이 뻔하다. 돌아본 그 애의 얼굴에 바오 자리잡은 이목구비가 또렷해 눈치도 없는 얼굴이 벌겋게 익었다. 비에 젖어 드러난 어깨가 든든하다. 멍하니 대답을 기다리는데 콧잔등으로 빗방울이 떨어진다. 눈 앞에 튕긴 물조각에 눈을 감았다 뜨자 저 아래 있던 잘생긴 얼굴이 두 뼘은 위에 있다. 작은 쪽문을 열자 환히 웃는다.


툇마루에 뻔뻔스레 자리를 잡은 괴를 쓰담는 손이 퍽 커다랗다. 비가 데려온 찬바람에도 고집스레 그 애 옆에 쭈그려 앉았다. 이렇게 젖은 몸으로 있다가는 내일즈음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할 거다. 그래도 이리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다.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눈이 마주치자 다시 정면을 바라본다. 너무 빤히 바라본 덧 같아 미안해진다. 가져다 준 수건으로 머리를 한 번 털더니 목을 한 번 큼큼 가다듬는다.

"비 피하게 해줘서 고마워."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에 소년의 향이 묻어있다. 사실 그 목소리에 취해 내용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달싹거리며 황홀한 소리를 내던 입술을 멍하니 바라보느라 대답이 없다. 뭔가 싶어서 고개를 돌리자 본 적 없다는 듯이 건공중을 응시하는 꼴이 스스로도 웃겨 실소가 나왔다.

"나는 김민규. 너는?"

돌아오지 않는 물음에도 꿋꿋이 말을 건다. 가슴께에서 느루느루 대답이 흘러나오지만 입술이 벌어지지 않아 답답할 뿐이다. 그냥 다시 고개를 무릎에 박았다. 벌써 열이 오른다. 머리가 핑글핑글, 현기증이 이는 것이 좋지 않다. 날씨가 이런 사시렁이같은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은데. 억울해서 눈물이 날 것 같다. 쓸모없는 몸뚱이, 콱 쥐어박고싶다. 코 끝이 찡하고 울린다.

"어디 아파?"

따끈한 몸이 다가온다. 얼굴을 묻은 채로 도리머리를 했다. 어디든 한낮같지 않은 부분이 없다. 붉게 달아올랐을 것이 분명한 얼굴을 들어올리는 손길조차 따스해 눈알이 시큰해졌다. 안 돼, 울지마. 이런 따스함이 코 앞에 있으니 다냥한 초원에 홀로 누운 기분이다. 행복하나, 외롭다. 검질기게 눈에 힘을 줘봤으나 당최 말을 듣지 않았다. 볼을 타고 또르르 굴러가는 눈물방울을 되알지게 문댔다. 창피함이 차올라 얼김에 벌떡 일어났다. 가무잡잡한 손이 따라 올라오더니 어색하게 허공을 젓는다. 다물려있던 입을 열고 거우 한다는 소리가.

"...미안."

꾹 먹힌 소리가 듣기에 우심하다. 후두둑후두둑 빗물처럼 쏟아지는 것이 있다. 따라 일어나려는 몸짓을 지나쳐 진둥한둥 방으로 들었다. 푹 젖은 몸으로 이불 속을 파고든다. 이 놈의 비가 갈개꾼인 줄 알았더니, 진짜는 나였다. 베갯잇을 척척하게 적시는 물들이 서러워 더 울음이 샜다. 말 한마디도 섞지 못했다. 이제 다시는 말소리를 듣지 못하거니와 몰래하던 눈바래기질도 어려워질 것이다. 부러 길을 에돌아가서라도 이 곳을 피할지도 모른다. 비가 그치면 나가야지. 비가 그치고, 오래, 오래 있다가 나가야지. 그래도 비가 와서 다행이다. 이 실토정을 내내 듣지 못할테니. 서툴게 잠겼다.


***

이내에 잠겨 어둑어둑한 하늘이 미닫이문 안까지 들어올 때 쯤, 눅눅한 몸을 일으켰다. 온 몸이 욱씬욱씬, 어딘가 얻어맞은 처럼 쑤시다. 잔뜩 부어 무게감마저 느껴지는 얼굴을 문지르며 문 밖으로 나간다. 휑하게 비어있어야 할 처마 밑에 그 애가 누워있었다. 잠시 뒷걸음질 치다가 색색 숨소리에 가만히 옆에 앉아 잠에 든 그 얼굴을 살핀다. 몸을 구부리고 불편한 자세로 잠든 얼굴이 평화롭다. 괜히 숨을 죽이고 무릎을 가슴팍까지 올려 쭈구리자 그 애의 얼굴이 움찔거린다. 다시 조용조용 들여다봤다. 다시 까무룩 잠에 빠진 건지 미동도 없다.

왜 가버리지 않은 거지.

비가 그친지는 꽤 되었다. 매 봄마다 찾아오는 산돌림은 고개만 디밀고 금세 가버리곤 했으니까. 추울텐데. 쌀쌀한 날씨에 콧물을 훌쩍이다 생각한다. 덮어줄 걸 찾으려 쭈그린 다리를 들자 커다란 손이 손목을 붙잡는다. 깨어있었다. 두려움에 머리가 차갑게 식으며 팔을 뿌리친다. 그래봤자 빼빼마른 팔이지만 순순히 손아귀힘을 푼다. 또 다시 눈물이 날 것 같다.

"왜, 왜 안가고..."
"울지마."

마음 같아서는 울긴 누가 울었냐고 성을 내고 싶지만 너무 코 앞에서 추하게 눈물을 떨군 터라 얼굴만 붉힌다. 아직도 눈물이 그렁그렁한데, 완전히 울보처럼 보이겠지.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있는다. 어쩌다보니 벌을 받는 아이처럼 무릎을 꿇은 채다. 허벅지 위에 올려진 손을 단단한 손바닥이 쓰다듬었다. 이런 다정함이 나를 울게하는 거다. 생 모르는 머저리에게 달디 단 행복을 나누어 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모르고.

***

이틀을 꼬박 앓고도 정신이 멍하다. 몸이 간정되자 봉주 아주머니는 이제 좀처럼 이 곳을 얼씬대지 않는다. 그 이상한 고집을 못 견디겠다나, 내 고집이 아니라 내 몸의 고집을 말하는 거겠지. 식은 땀으로 가득한 몸뚱이를 발견한 아주머니의 괴악스런 얼굴을 떠올리자 실없는 웃음이 샜다. 평소처럼 모가지를 문턱에 걸치고 고개를 빼꼼히 밖으로 내민다. 흙마당은 바싹 말라 그제 있던 일이 거짓말이라고 속삭였다.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사실은 허상에 속아 혼자 청승맞게 찬 바람만 들이 쉰 것이다. 스스로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내리지도 않은 빗소리가 토해내는 환상을 받아들인 거라면. 조금 슬프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꼼짝없이 방 안에 틀어박혀 있는 동안 보지 못한 그 애가 머리 한 구석에 콕 박혀 사라지지 않는다. 문득 겁이 났다. 그제 있던 일만이 아니라 그 애까지 허상이면 어떡하지. 애오라지 생겼던 마음이 폭삭 주저앉는 기분이다. 차가운 손 등에 얼굴을 묻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 짓눌린 눈알이 먹먹하다. 사실, 이정도 아픔은 견딜만 한 것 같다.

"울어?"

낭랑한 목소리가 퍼진다. 저도모르게 몸을 일으켜 반듯하게 앉는다. 불긋하게 피가 몰린 얼굴이 늘씬한 미소와 마주한다. 다시 고개를 푹 숙이려다 순간 울컥해 눈을 매섭게 떴다.

"안 울어!"

앙칼진 말씨에 터진 웃음이 청량하다. 안 울면 말고, 미안해. 담벼락에 팔을 걸치고 곧게 바라보는 눈빛이 부끄러워 눈 둘 곳을 찾지 못한다. 아까까지만 해도 겁을 집어먹고 우울해져 있었는데, 신기하다. 여름의 한낮 같이 환하다가도, 이렇게 장난스러운 봄 햇살같이 따스해진다. 삐뚜름한 덧니가 비치더니 밝은 목소리가 떠오른다.

"들어가도 돼?"

의외의 말에 눈이 동그래졌다. 잠깐 망설이다가 느릿하게 고개를 꾸닥이는 모습이 바보같을 것이다. 성큼성큼 들어와 미닫이 문 앞에 자리잡는다. 옅은 땀냄새와 바람냄새가 섞여 들어온다. 걷어올린 셔츠에 보기좋은 팔 근육이 살짝 드러나 괜히 제 강파른 팔을 주억거린다. 몇 번 휘적이다 눈이 마주치자 객쩍게 웃었다.

"아팠어?"
"..감기였어."

고작 감기로 이틀을 앓아눕느냐고 생각하겠지. 이 주제를 꺼내고 싶지 않아 하는 걸 눈치챘는지 다른 얘기를 꺼낸다.

"그 고양이 말이야. 까만 얼룩이, 알지."
"응"
"우리 집에 와서 자꾸만 음식을 나눠주다 보니 친해졌어. 그 작은 몸으로 엄청나게 먹더라고. 우리 동생보다 많이 먹는 것 같아."
"동생?"
"응, 여동생 하나가 있지."

그 놈의 괴가 어디서 그렇게 살이 붙어 왔나 했더니, 고개를 작게 꾸벅거렸다. 저를 보려 매일 마주하는 담벼락을 바라보는 그 애의 모습을 보니 기분이 이상하다. 홀린 듯 반듯한 얼굴을 본다. 대답이 없어도 꾸준히 말을 이어간다.

"동생이 이름을 붙여줬어, 솔이라고. 소나무를 좋아한다나. 여기는 매화나무가 있지. 우리 집 뒤에는 소나무 산이 있거든. 예쁜 꽃은 없지만 시원한 향이 그럭저럭 좋아."
"나도,"
"응."
"나도, 보고싶어."
"그럼 같이 보러갈까?"
"그래도 돼?"
"여기서 금방이야. 가름길에서 왼쪽으로 가면 보이거든."
"그렇구나."

사실 가름길까지는 발 끝도 디뎌본 적이 없다. 이 얇은 몸은 본채 앞마당 가는데도 숨이 모자라다. 대충 아는 척 추임새만 거들어도 충분했다. 어차피 진심으로 하는 말도 아닐테다. 다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물먹은 솜처럼 빠르게 가라앉는 기분에 멍청한 눈가는 또 소금내를 풍긴다. 제발 가만히 좀 있어라. 제멋대로 나부대는 마음을 다잡지 못해 구르는 물방울을 재빨리 훔친다. 도르르, 쓱. 도르르, 쓱. 금세 주변이 어둡다.


***


얘기를 듣느라 찬바람을 조금 쐬었다고 또 몸이 욱씬거린다. 꾀꾀로 찾아오던 아픔의 빈도가 잦아지는 것이었다. 어쩌면 마지막 아픔일지도 모른다. 굳게 닫힌 문을 본다. 저 너머에 그 애가 있을 수도 있는 건데. 어쩌면 이 쪽을 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럼 진짜루 좋겠다. 헤쓱해진 얼굴에 바보같은 미소가 번진다. 얕은 웃음이 기침에 먹혀들어간다. 보고싶다. 베개에게 몇 번을 속삭였는지 모르겠다. 엄마를 찾던 어린 애처럼 중얼거리며 눈물 조각을 선물하기도 한다. 이러다간 다 나으면 찾아올 그 애에게 퉁퉁 부은 얼굴을 보여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생각을 하자.
소나무를 보여준다고 했었지. 종종 책에서 표현되는 소나무를 떠올린다. 얇고 뾰족한 잎, 사시사철 푸른, 어쩌면 그 애를 닮은 듯하다. 높은 소나무로 덮인 야트막한 산에서 그 애와 내가 웃고 있는 상상을 한다. 녹색 잎들 사이에 곧은 햇살이 그림자로 어두운 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솔이는 그 햇살을 집으려 조막만한 발을 놀린다. 그 애가 햇살보다 밝게 웃으며 무어라 외치면 나도 따라 힘껏 소리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리고... 베개가 머리칼을 적실정도로 젖었다. 형태를 알 수 없는 것이 마구잡이로 찾아온다. 아이처럼 엉엉 울고 싶어졌지만 가만히 눈을 감는 것을 택한다. 연습했잖아, 매일 자곡자곡이, 가만히 누워서 말이야. 그럼에도 쏟아지는 아픔은 그 애를 향한 것이다. 부끄러움인지 미안함인지 이름을 불러보지도 못했다. 또 마음이 잔뜩 쓰리다. 혀 끝에서 산뜻하게 걸리는 이름을 맘껏 되뇌이며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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